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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인사검증 시스템, 외양간이라도 고쳤으면

등록 2019-09-17 17:57수정 2019-09-18 09:48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싼 논란과 검찰의 칼춤으로 모두들 뒤숭숭하다. 어지간한 사람이면 넌덜머리가 날 정도이고 내 경우엔 심지어 사람을 만나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혹시나 그 얘기를 또 들어야 할까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얘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수많은 언설 중에서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 것 같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공직자 검증 과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조국씨를 장관으로 지명하기 전에 무엇을 물었을까? 그리고 그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나중에 알려진 의혹에 대해 조국씨는 처음부터 청와대에 자발적으로 알렸을까? 알렸다면 어디까지 알렸을까? 부실한 대답이었던 것은 없었나? 나는 조국 임명에 대한 찬반을 떠나서 명백히 부실했던 청와대의 검증 과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현상이 이상하기 짝이 없다.

미국 정부가 인사 검증을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본 적이 있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마이크는 나와 같은 해에 경제학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이었다. 그는 2년차 말에 박사논문 제출 자격시험에 떨어지자 학교를 떠났다. 몇달 후 학교 사무실에 중년의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나타났다. 마이크가 연방정부 모 부처에 응모해서 그에 대한 검증을 하러 왔다고 했다. 그는 하루 종일 캠퍼스에 머물면서 교수들과 나를 포함한 동급생들에게 그의 행적과 발언에 대해 묻고 다녔다. 그가 누구와 친하게 지냈는지, 술은 많이 마셨는지, 마약을 하지는 않았는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한 적은 없었는지, 성품은 어땠는지 등을 물었다. 마이크의 나이와 경력상 그가 응모한 직급이 대단한 것이 아닐 수밖에 없는데도 그를 검증하기 위해 에프비아이 요원이 온종일 묻고 다닌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렇게 인사 검증이 철저한 미국이니 장관이나 대법관에게는 어떻겠는가? 서면 질문은 물론이고 1차 리스트 대상자들에 대해 우선 에프비아이가 나서서 온갖 동네를 다니면서 묻고 다닌다. 그다음 장시간에 걸쳐 에프비아이가 직접 면담을 통해 질문한다. 그것을 통과한 사람에겐 다시 백악관 변호사들이 나서서 직접 묻는다. 최근 은퇴한 케네디 대법관은 임명 전에 에프비아이와 열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했고, 그다음엔 백악관에서 법무부 장관 및 검증 담당 변호사들과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거쳤다고 한다.

무엇을 물어볼까? 안 물어보는 게 없다고 한다. 후보자의 금전관계, 사업관계, 세금, 저작물, 유년 시대, 가족관계, 건강 이력, 심지어 개인 사생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묻는다고 한다. 포르노를 산 적이 있는가, 중고등학교 때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가, 했다면 몇명과 했는가, 피임 기구는 썼는가, 임신하거나 임신시킨 적은 없는가 같은 것도 묻는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나라지만 우리가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것까지 포함해 그야말로 탈탈 턴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자기들이 묻지 않았거나 모르는 것 중 나중에 알려지면 시끄러운 것은 없는가도 묻는다. 물론 그의 능력과 인품을 확인하기 위해서도 하지만 그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나중에 그를 협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인사 검증을 할 때 가장 꺼리는 것은 자기들이 알지 못했다가 지명 후 공중이나 의회에 의해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돌아오자. 한국에선 인사 검증을 청와대가 맡아서 한다. 경찰이 보조하긴 하지만 미국의 에프비아이처럼 깊게 개입하지는 않는다. 정부 인사 검증을 위해 경찰이 후보자의 주위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청와대의 인사 검증 담당자가 후보자를 직접 만나서 정식 인터뷰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들이 물어보는 것 역시 미국에 비하면 매우 제한적이며 그리 자세하지도 않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조국 장관의 딸이 학회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것을 청와대는 알았는가? 그의 답변은 무엇이었고, 그에 대해 청와대는 무엇을 어디까지 조사했는가? 그가 기자간담회와 청문회에서 답한 정도로 청와대는 만족했는가? 사모펀드의 경우에도 청와대는 그의 가족의 금전관계와 사업관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이에 대한 의심과 논란을 떠나, 현재 사실로 알려진 정도까지라도 조국씨는 청와대에 알려주었고, 청와대는 파악하고 있었는가?

의혹만으로 낙마시키면 안 된다는 대통령의 말은 맞다. 그러나 그 의혹을 청와대는 충분히 조사했는가? 그게 국민 몫인가? 뒤늦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자. 후진 인사검증 시스템 말이다. 시스템 개선, 우리가 그걸 좀 못한다. 그거 잘하는 게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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