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추석 무렵 글쓰기 수업에서 한 삼십대 여성은 명절과 제사 때 시가에 가지 않는다고 썼다. 이유는 이랬다. “가족이라고 모인 사람들이 오히려 가족 단위로 다시 뭉쳐 또 다른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다.” 이 이상한 전통이 자기 선에서 끝나길 바라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며, 편가르기와 뒷담화의 자리를 대신해 부모님을 따로 찾아뵙거나 같이 여행을 가는 식으로 효행을 실천한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나쁜 며느리’라는 친척들의 냉담한 시선을 감수하는 이행기를 거쳤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가 질긴 관습을 끊어낼 수 있었던 용기와 언어의 원천이 궁금했는데 글에는 나오지 않아서 물었다. 엄마의 당부란다. 대가족 집안의 배우자와 결혼하는 딸에게 완벽하려 애쓰지 말라고, 길게 볼 사람들이니까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조율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집단이 우선인 가족주의 체제에서 가장 약자인 며느리가 될 딸에게 ‘나를 지키는 법’, 즉 ‘다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 엄마는 참 멋지구나. 우리가 듣고 쓰는 말은 참 정치적이구나! 한 사람의 세계를 구성하는 건 결국 자기가 접하는 말과 행위다.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몸에 흘러든 말들이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준거 삼아 진로를 선택하고 경험을 해석한다. 행 혹은 불행을 느낀다. 사실 명절급 뒷담화와 잔소리가 상시 생산되는 장은 따로 있다. 계모임이다. 한 삼십대 비혼여성은 평소 멀쩡한 엄마가 친척이나 친구들 계모임에만 다녀오면 심란한 얼굴이 된다고 했다. 남들의 자식자랑 후손자랑을 듣고는 위축돼 온다는 것이다. 속상한 엄마를 보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나도 속상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계모임만 안 나가도 신관이 편안하실 텐데.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서부터 엄마들 모임에 합류했다. 초보들끼리 육아 정보와 양육의 고달픔을 나누니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자라면서 먹이고 놀리고 재우는 대화 내용이 사교육과 입시로 변해갔다. 그 욕망의 진도가 버거워졌다. 거기만 갔다 오면 나만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전신을 강타했다. 부모로서 직무유기를 하나 싶어 속이 시끄러웠다. 약도 없는 원인 모를 두통 같은 불안은 책읽기나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며 사라졌다. 내 주변은 대학 진학, 취업,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같은 생애 기획을 무조건 따르기보다, 자기 좋음에 맞게 선별하는 사람들 비율이 높아졌다. 그들과 섞여 읽고 쓰며 사는 얘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양육자로서의 혼란이 잦아들었다. 자기 속도와 방식대로 자라는 아이를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래서 저 비혼여성의 어머니께도 계모임 말고 책모임을 권하고 싶었던 거다. 요즘은 도서관이나 동네서점을 거점으로 읽고 쓰는 모임이 제법 많다. 그런 곳에선 비혼 상태를 동정하는 게 아니라 왜 결혼하는지 질문하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비혼만이 옳다는 게 아니다. 삶에 정답이 없음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 경험을 다른 맥락 속에 넣어보게 하는 공적 관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는 방식은 많다는 걸 아는 게 해방이다. 나도 기성세대라서 젊은 기혼자들이 명절에 시가에 안 간다고 하면 일단 흠칫한다. 이론은 알아도 감각이 낡아서 그렇다. 가끔 할머니들이 결혼하고 이십년 동안 명절에 한번도 친정에 못 갔다는 얘길 들어도 입이 벌어지긴 마찬가지다. 어떻게 사셨냐고 여쭤보면 “그땐 다 그랬다” 하신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로 세상은 달라지는데, 그 변화는 어슷비슷한 욕망의 재생산이 이뤄지는 집단이 아니라 상식과 규범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장에서 싹을 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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