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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상봉, 씨알의 철학] 대학은 꼭 있어야 하는가

등록 2019-10-01 17:06수정 2019-10-02 09:41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공연히 책은 써서 이름이 알려지니, 때로는 자기도 기억나지 않는 말을 자기 책에서 읽었노라 인용하는 사람까지 있다고 푸념한다. 철학자에게 허명은 뜬구름처럼 부질없는데, 나야말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어리석은 말을 보탠 죄로 내가 쓰지도 않은 글이 전남대 철학과 아무개의 글이라고 버젓이 사진과 함께 인터넷상에서 퍼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다. 나중을 위해 확인해 두거니와 ‘조국의 시련’이라는 제목의 글은 내가 쓴 적도, 기고한 적도 없는 글이다. 부디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올해는 부마항쟁 40주년이다.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를 끝장낸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4·19 이래 처음으로 학생의 봉기에 민중이 합세한 항쟁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민중항쟁사에 새로운 시대를 연 사건이기도 하다. 그런데 동학농민전쟁 이래 민중항쟁의 역사박물관이라고 불러도 좋을 우리 근현대사에서, 항쟁은 주로 목련꽃 벌어지는 이른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에 터져 나왔다. 그래서 3월은 3·1운동이요, 4월은 4·19요, 5월은 5·18이요, 6월은 6월항쟁이다. 그런데 40년 전 부산과 마산의 항쟁은 금정산엔 단풍 들고 합포만엔 기러기 날던 시월이었다. 낙엽 지던 가을에, 전라도가 아니라 경상도에서, 유신독재를 끝장낸 거대한 봉기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처음 터뜨린 학생들은 무슨 운동권 조직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냥 시대가 너무 아팠고, 자신의 비겁이 부끄러웠다. 마산에서 경남대 봉기의 불을 처음 댕겼던 정인권은 언제 끝날지 모를 도망길에 오르기 전 꼭 한번 포항 고향집 엄마가 보고 싶었다. 웃지 마시라. 살아서 엄마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엄혹한 시절이었다. 하여 가엾은 파랑새는 기어이 엄마 있는 새장으로 날아들었는데, 이걸 어쩌나, 엄마 품에 잠들어 도망길에 오르기도 전에 체포되고 말았다. 포항경찰서 유치장 문 밖에서는 경찰관이던 그의 형이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공평하게 분배된, 시대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평등하게 분배된 시대의 슬픔과 탄식 그리고 분노와 동경이 또한 우리의 구원이었다. 그가 다시 마산으로 압송되어 혹독한 심문을 받기 시작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수사관들이 친절해졌다. 박정희가 부마항쟁의 해일에 휩쓸려 사망한 것이다. 그는 간첩으로 둔갑되는 운명을 피하고 한두달 뒤 석방되어 다시 엄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40년 뒤 다시 돌아온 시월에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을 끝없이 밝힌 눈부신 촛불을 보면서 나는 지금 이 나라에서 이런 씨알들 곁에 살아 있음을 하늘에 감사한다. 그런데 그 감격 속에서도, 맴도는 물음이 있다. 돌아보면, 검찰로 하여금 그리도 기세등등하게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그 가족을 물어뜯게 만든 건, 강남 길 ‘스카이 캐슬’에 대한 우리의 깊은 원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학벌이 신분이고 계급인 나라에서 시험 성적 때문에 무시당하고, 차별당하고, 매 맞던 우리의 어린 시절, 그 트라우마는 치유되었는가? 아니다. 현실의 검찰폭력에 대한 의식적 분노가 너무나 커져서 무의식 속의 학벌 트라우마를 눌렀을 뿐이다. 위로받지도, 치유되지도 못한 마음의 상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시 분출될 것이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원한다면, 상처를 덮지 말고 드러내어 말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유신독재의 성채는 무너졌으나, ‘스카이 캐슬’은 40년 전보다 훨씬 더 강고해졌다. 그때는 서울대 갈 것이 아니면 지방에서 굳이 서울의 비싼 사립대학에 갈 필요가 있나,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 국립대 역시 ‘지잡대’라는 모욕적인 이름을 피하지 못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나 이유를 안다 한들, 그게 또 무슨 소용이겠는가. 듣자 하니, 고려대에서 조국 반대 촛불은 서울캠퍼스 학생만 들고, 세종캠퍼스 학생은 거기에 못 낀다는데, 같은 대학의 다른 캠퍼스 사이에도 이런 차별이 있다면, 다른 대학들 사이는 오죽하겠는가? 학벌주의는 더도 덜도 아니고 인종주의이다. 누구라도 제 자식이 천민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 ‘스카이 캐슬’에 자식을 집어넣기 위해 부모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는 모른다. 공부라는 이름의 아동학대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이런 아동학대는 ‘스카이 캐슬’을 파괴하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며 되묻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대학은 있어야 되고, 대학이 있으면 서열이 있어야 되고, 서열이 있으면 차별도 있어야 된다.’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으려는 이런 고집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학벌 차별이라는 현실은 학벌 타파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고, 이런 생각의 고착은 현실의 학벌 차별을 더 악화시킨다. 이 악순환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홀로 상처받고 죽어간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불가능한 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꼭 있어야 하는가? 이번엔 내가 대답할 수 있다. 없어도 된다. 아니, 없애야 된다. 대학의 생명은 학문의 연구와 전수에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은 이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혹시 대학을 나오고도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거든, 스스로 대학 4년 동안 무슨 공부를 했는지 한번 돌아보시기 바란다. 태반이 수능 점수에 맞추어, 오기 싫었던 대학의 낯선 학과에 입학해 토익, 토플, 삼성, 현대, 공시, 고시, 공기업,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대학원, 온갖 취업 시험 준비로 전공 학문은 서자 취급 받는 나라에서, 각종 고시학원과 취업학원이 있으면 되지, 대학은 왜 필요한가? 진심으로 말하거니와 부질없이 대학에 쏟아붓는 막대한 예산은 청년들 결혼장려금과 창업지원금으로 쓰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대학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 영원 전부터 대학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모든 나라의 대학제도가 같은 것도 아니니, 대학이 왜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 묻고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예를 들면, 독일 대학은 원래 모두 국립이고 학비도 없는데, 서로 평준화되어 있어 교수들은 이 대학 저 대학 옮겨 다니고, 학생들은 그런 교수를 따라 이 도시 저 도시 옮겨 다닌다. 게다가 철학이나 수학처럼 실험실습 기자재가 필요 없는 대다수 학과는 아예 정원도 없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만 붙으면 된다. 공부하고 싶으면 오고, 싫으면 말라는 것이다. 그러니 특정 대학의 학벌 권력은 있을 수 없고, 청소년들은 공부할 것 아니면 굳이 대학을 가지도 않는다. 그리고 반대로 대학에 가면, 해야 할 학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가?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바꾸자! 우리 아이들이 이 지옥에서 다 죽어 나가기 전에!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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