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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상봉, 씨알의 철학] 학자의 길

등록 2020-06-02 17:25수정 2020-06-03 02:39

대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왜곡되지 않은 정보이지 다른 사람의 계몽이나 지도편달이 아니다. 그러니 학자나 전문가가 해야 할 일도 설교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일일 것이다.

3년 전 교토대학의 오구라 기조 교수가 출판한 <조선사상전사>는 거의 절반이 대한제국 이후 현대 한국 사상에 할애되어 있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철학사를 하나로 이어 쓴 책인데, 중국 철학을 처음 공부하는 외국인이 펑유란이 영어로 쓴 중국 철학사를 읽듯이, 한국 철학을 공부하는 외국인이 이 책을 읽게 되리란 걸 생각하면, 이런 종류의 책을 일본인 학자가 처음 썼다는 것이 한편에서는 고맙지만 한편에서는 부끄럽기도 하다. 다행히 오구라 교수의 기본적인 관점은 공감이 가는 데가 많은데, 다른 무엇보다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한국 사상의 고유한 개성을 “사상의 혁명적인 정치적 역할”과 “조선적 영성”이라고 규정한 것은 두고두고 소중한 통찰로 남을 것이다. 수운 최제우나 함석헌에게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이런 개성은 원효나 퇴계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사상 전체의 독보적인 개성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오구라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이나 일본에서 쓰이지 않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지성인’이라고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낱말은 일본에서 쓰이는 지식인과 비슷한 듯하지만 전혀 다른데, “본질적이고 강인한 도덕성이 토대에 있어 그 위에서 동서고금의 교양을 몸에 익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가기 위하여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력을 갖춘 사람을 한국에서는 지성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416쪽) 그러면서 조선시대 선비 역시 그런 지성인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모든 전통이 그렇듯이 한국적 지성인의 전통도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젊은 세대는 오구라 교수가 말하는 지성인이란 존재에 대해 그다지 실감하지는 못하리라 생각한다. 다른 무엇보다 그런 지성인을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젊었을 때 오구라 교수가 말하는 그런 지성인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이를테면 함석헌, 리영희, 문익환 같은 분들은 우리가 말할 수 없을 때 먼저 말했고, 행동할 수 없을 때 먼저 행동했다. 그리고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그들은 우리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성인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시대에 공론장에서 발언하는 것은 아무런 용기도 필요로 하지 않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권력에 저항하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독재를 한다고 아무리 크게 떠들어도 그것 때문에 잡혀가 고문당할 염려는 없으니, 아무나 아무 소리나 해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웅변이 아니라 성찰이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에 지성인이 필요했던 까닭은 국가가 제구실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국가권력과 시민이 본질적 전쟁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하면 소수의 무리가 국가권력을 찬탈하여 사사로운 이익을 도모하던 것이 엊그제까지의 일이었다. 그런 나라에서 세상과의 불화는 깨어 있는 정신의 징표였다.

나는 오구라 교수가 말하는 그런 지성인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옛 스승들의 모범에 따라 최소한 “만수산 드렁칡”처럼 세상과 뒤엉켜 곡학아세하지는 않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5·18 40주년을 맞는 올해, 나는 앞으로도 세상과 불화하는 삶을 살겠지만 그 불화의 대상과 방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워낙 오래전 읽은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최인훈 선생의 소설 어딘가에 그런 말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해방 뒤에 친일파가 아니라 김구 선생 같은 독립투사들이 집권했더라면 그들이 나라의 기틀을 닦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그들을 비판하고 극복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갔으리라고.

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40년 전에 그 말은 불가능한 사실에 대한 가정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5·18 이후 40년이 흐른 지금 전두환의 민정당과 박정희의 공화당에 뿌리를 둔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우리가 몽상인 줄로만 알았던 나라가 단지 느리게 왔을 뿐 문득 현실로 도래했음을 깨달았다. 독립운동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민주화운동 세대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주역이 된 것이다.

예전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지금쯤이면 우리 사이에 희망이 절망이 되고 열정이 냉소로 바뀌었을 시기이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역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좌절이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촛불혁명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 이래 안팎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료 시민들을 더 신뢰하게 되었고 한국 사회를 이전보다 훨씬 더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세상을 염려하듯이 나처럼 세상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어디나 있고, 나라 안팎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경험과 지혜가 민주적인 과정과 절차를 거쳐 국가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지금 한국 대중의 정치적 식견과 교양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여론은 예민하게 움직이고, 그 여론이 다시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렇게 힘들여 얻어낸 민주주의의 힘일 것이다. 물론 여전히 정부 안에 검찰처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있고, 나라 안에도 재벌권력이나 족벌언론처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있다. 하지만 민주적으로 선출된 권력이 그렇지 않은 권력에 비해 훨씬 더 합리적이고 전문적이라는 것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지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도태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런 시대에 나 같은 책상물림이 할 일이 무엇일까? 대중을 위해 필요한 것은 왜곡되지 않은 정보이지 다른 사람의 계몽이나 지도편달이 아니다. 그러니 학자나 전문가가 해야 할 일도 설교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일일 것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었다고 해서 지상낙원이 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여전히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다. 하지만 판사가 판결로 말하듯이, 학자는 이론으로 말해야 한다. 그리고 정당은 그런 이론에 따라 정책으로 경쟁해야 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치는 전쟁이었고, 그 와중에 학자는 더러는 투사가, 더러는 논객이 되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지금 나도 이제 학자로서 이론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그동안 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김상봉 ㅣ 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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