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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코즈모폴리턴] 트럼프는 반세계화 운동가인가? / 조계완

등록 2019-10-03 17:25수정 2019-10-04 13:59

조계완
국제뉴스팀 기자

“미래는 글로벌리스트의 것이 아니라 애국자의 것이다.”

지난 9월25일 유엔총회장 연단에 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37분 연설은 이 한 문장으로 집약할 수 있다. 지구상 다른 192개 나라를 향해서도 ‘자국(미국) 우선주의’ 교의를 실천 명제로 따라야 한다고 가르친 셈이다. 지구상의 가장 큰 연설 무대임을 의식한 듯 “우리 주위와 지구 행성을 둘러보면 진실은 복잡하거나 까다롭지 않다”며, 특유의 단순 명쾌한 말로 글로벌리스트에 대한 적대감을 연신 설파했다. 앞뒤 맥락에 비춰보면 그가 일컬은 ‘글로벌리스트’는 세계화 및 자유·개방무역 주창자들이다. 글로벌리스트는 1920년대에 미국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자신이 발행하는 주간신문에 반유대인 인종차별을 선동하면서 사용하는 등 정치적 반대파를 겨냥한 경멸적 어휘로 흔히 쓰이곤 했다.

자못 흥미롭고 사뭇 의아하기도 하다. 과연 ‘반세계화’ 기치 아래 트럼프와 국제시민연대가 서로 악수한 것일까? 세기말인 1999년 11월30일 미국 시애틀에서 국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세계화의 수레바퀴를 멈추라”며 대항세계화·대안세계화를 ‘전투적 함성’으로 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WTO) 그리고 미국 등 세계화 기구들이 주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은 90년대 중반부터 골치 아픈 국제적 논쟁 주제로 등장했다. 각국의 대통령·총리 주재 국가경제정책회의와 기업 이사회에서 신문 오피니언면, 대학 강의실에 이르기까지 세계화의 ‘신화와 현실’을 둘러싼 논박이 이어졌다.

한쪽에선 “밀물이 차오르면 정박해 있던 다른 모든 보트도 솟아오른다”는 세계화의 힘과 약속이, 다른 쪽에선 “그 물결에 폭풍이 수반되면 작은 배들을 해변으로 밀어내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린다”는 상처받기 쉽고 깨진 약속이라는 비판이 출몰했다. ‘세계화 경제학’을 둘러싼 의문과 불만(조지프 스티글리츠), ‘세계는 평평하다’(토머스 프리드먼)는 미덕이 동시에 제출됐다. 물론 트럼프는 노회한 비즈니스맨일 뿐 이론적 논변이나 인류 공동의 가치 같은 건 극도로 혐오한다. 어쩌면 ‘트럼프 없는 세계’에서도 세계화 물결은 조만간 어떤 한계점에 근접하는 경로에 접어들었을 수도 있다.

오직 경제적 이득만이 그에겐 곧 정의이고 애국이다. “아마도 트럼프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게 될지 스스로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다. 트럼프에게 불가능은 없을 것이다.” 2017년 1월 서울에 온 미국의 저명한 경기 예측 전문 경제학자 앨런 사이나이가 프레스센터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트럼프는 3년 가까이 세계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외생적 충격’이다. “바다에서, 나의 무의 위치는 적의 위치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김훈, <칼의 노래>) 유엔에 가입한 192개 나라의 함대도 트럼프의 위치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고 있다.

유엔총회장은 74년간 전세계 지도자와 영웅들이 인류 번영과 빈곤 퇴치, 꿈과 희망을 향한 열정, 혁명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용기를 역설해온 장소다. 1960년 군복을 입고 4시간29분간 연설을 이어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그 몇해 전 “자본가들을 무덤으로 보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 소련 니키타 흐루쇼프의 포옹은 워싱턴을 냉전 공포에 빠뜨리기도 했다. 냉전도 카스트로도 사라진 2019년 트럼프는 인류 공동체보다는 “미국에 신의 가호를”이라며 ‘애국’으로 연설을 끝냈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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