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이던 2004년 검사동일체 원칙을 손보는 검찰청법 개정이 이뤄질 때, 검사 인사권 규정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대통령에게 제청하도록 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다는 명분이었으나 강금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 제도가 ‘총장이 개혁 인사에 반발과 도전을 하게 된 주요 근거가 됐다’고 훗날 평가했다(<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보통의 장관과 외청장 관계와 다르다.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검찰총장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지휘를 받지만, 실제 지휘한 공식 사례는 강정구 교수 사건이 유일하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하라고 서면 지휘하자 김종빈 검찰총장은 사표를 던졌다.
한때 총장을 큰 허물 없이 마치면 장관으로 ‘영전’하는 관행이 있었다. 정부 수립 직후 권승렬 초대 검찰총장이 재임 7개월여 만에 2대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한 이래 모두 8명의 총장이 곧바로 장관으로 직행했다. 5공화국 말기 이종남 검찰총장과 6공 첫 임기제 총장 김기춘은 각각 1년3개월~6개월여 쉬었다가 장관으로 옮겼다. 검찰의 정치 중립이 강조되면서 영전 관행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정권 성격과도 무관하지 않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엔 정권의 통제 아래 갈등이 빚어질 일도 별로 없었다. 인사권 역시 검찰 선후배인 장관·총장의 역관계가 작용했으나 최우선은 청와대 뜻이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황교안 장관과 채동욱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갈등을 빚은 것 정도가 사건이라 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가족을 수사하는 역대급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도 총장 인선을 주도한 직전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 장관이란 점에서 충격은 더하다. 우리 사회에 검찰개혁과 교육개혁, 계층 문제에 이르기까지 근본적 과제를 던져준 이번 사태도 결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박지원 의원의 진단처럼 ‘운명공동체’로 엮인 둘 모두의 해피엔딩이 가능할까.
김이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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