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외국여행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국민이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가 별로 없다. 시골 농부도 도시 서민도 나라 걱정에 한숨과 격정을 쏟아낸다.
그 힘으로 일제강점기와 분단과 전쟁을 견뎠다. 그 힘으로 독재를 몰아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촛불혁명을 완수했다.
10월3일 개천절 광화문 집회와 10월5일 주말 서초동 촛불 문화제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쏟아져나왔다. 두 집회에 모두 가보았다. 광화문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장관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넘쳤다. 서초동에는 검찰과 언론,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과 질타가 쏟아졌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분노와 비판보다는 나라 걱정이 더 컸다. 동원된 사람도 있었겠지만 한판의 거대한 정치 축제와 같았다. 국론 분열은 공연한 호들갑이었던 것 같다. 하긴 국론이 언제는 하나였던가?
문제는 앞으로다.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일단 집회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초동 촛불 문화제는 12일 토요일 9차 집회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마지막 집회이니만큼 참가자가 지난번보다 더 많을 수는 있겠다.
10월3일 개천절 광화문 집회를 주도했던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라는 단체는 10월9일 한글날에도 대규모 집회를 하겠다고 광고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10월12일 광화문 집회를 취소했다. 아무래도 국민 눈총이 따가웠나보다.
남은 유일한 변수는 검찰 수사다. 검찰주의자 윤석열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은 무소불위다. 정권보다 더 힘이 세 보인다. 구속 영장을 청구하든 공소장을 변경하든 추가 기소를 하든 검찰 마음대로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증거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검찰이 책임져야 한다.
수사 장기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조국 정국’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손실이 너무 크다. 영장 담당 판사나 재판부 등 법원의 판단이 고비가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법원의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
이제 수습 국면이다. 정치가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인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최근 표출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엄중한 마음으로 들었다”며 “많은 국민이 의견을 표현했고 온 사회가 경청하는 시간도 가진 만큼 이제 문제를 절차에 따라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적절한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0일 취임사에서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런 약속도 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의 꿈과 희망이었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그래도 문재인 대통령이 지금보다는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1년 뒤 <1219 끝이 시작이다>라는 책을 내놓았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회고와 평가를 이렇게 담았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는 ‘개혁과 통합’을 선거 구호로 내세웠습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에서 확정한 국정 과제 12개 중 3개가 국민 통합과 사회 통합에 관한 것일 만큼, 통합을 가장 중요한 국정 목표로 삼았습니다.”
“수시로 ‘국민과의 대화’ 행사를 하면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과의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직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말하기는 이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국민 통합에 실패한다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처럼 국민 통합을 외면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같은 실패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결국 실패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국민 통합을 외면한 탓이 가장 크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노무현이라는 정면교사(正面敎師)도 있고 박근혜라는 반면교사(反面敎師)도 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