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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공공언어의 주인 / 김진해

등록 2019-10-13 17:49수정 2019-10-21 09:48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공정’이 뭔지, ‘가족’이 뭔지, ‘사랑’이 뭔지. 어디까지 공정하고 어디부터 공정하지 않은지 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평소에는 뿌옇고 희미한 채로 놔둔다. 그러다가 때가 차면 개념을 문제 삼게 되고 다툼과 혼란이 생긴다. 새로운 길로 향하는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흔치 않다.

여하튼 공공언어에 대한 공식 정의는 ‘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 산하 공공기관 등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이다. 공무원들이 국민을 대상으로 생산하는 모든 언어란 뜻이다. 이에 따라 쉬운 공공언어를 쓰라면서 교육 홍보, 실태조사, 격려와 주의 조처가 잇따른다.

하지만 공무원 언어만을 공공언어의 반열에 올려놓으면 문제가 생긴다.

첫째, 공공언어에 대한 오해를 낳는다. 공무원 언어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것쯤으로 이해하게 된다. 공공언어는 다층적이다. 공공언어는 마을 골목에서 도서관, 공원, 학교, 관공서, 군대, 신문·방송, 정치에 이르기까지 규모와 성격이 다른 공간에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실행된다.

둘째, 언어정책에 왜곡을 가져온다. 공무원 언어에만 집중하면 공공언어에 대한 입체감 있는 정책을 외면하거나 뒤로 미루게 된다. 평등한 언어 사용은 공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개인의 언어 역량과 사회적 감수성 문제다.

셋째, 공공 영역에 개인이 관여할 여지를 차단한다. 개인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다. 언어 생산자다. 언어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성한다. 공공언어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다. 관점을 바꾸면 할 일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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