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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주진형 칼럼] 불신만 키우는 한국경제 선방론

등록 2019-10-15 18:04수정 2019-10-16 13:57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지난 일요일 이호승 대통령 경제수석이 기자 브리핑을 통해 “(한국 경제가) 비교적 선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경제와 무역량이 정체에 빠지면서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 같은 나라가 경기에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하며, 현 경기 하락은 경기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 등락 현상인데 이를 두고 위기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한국 경제가 나름 선방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최근 3년간 30-50 클럽 7개 나라 중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거나 두번째로 높다는 점을 들었다.

앞의 말은 맞으나 뒷부분 선방론은 심각한 왜곡이다. 엉뚱한 나라들과 비교를 했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이들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그래프로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은 이들 중 가장 후발국가여서 경제성장률이 압도적으로 1등이었다. 심지어 2010~2018년 동안에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단순 평균(3.4%)은 이들 국가 평균(1.5%)보다 1.9%포인트나 더 높았다. 그러나 2012년부터 세계 무역량이 정체되면서 우리의 성장률은 그들 수준으로 빠르게 근접해가서 요즘은 이들 국가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 마당에 후발국가가 자기를 이들 국가와 비교해 1~2등을 하고 있다고 선방론을 펼치면 듣는 사람이 갑갑해진다.

이 수석이 비교 대상으로 선정한 30-50 클럽은 1인당 소득이 3만달러 이상이면서 인구가 5천만명 이상인 나라들을 일컫는 명칭으로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이 여기에 속한다. 이 말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20-50 클럽을 들고나오면서 시작되었다. 5천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이면서 “선진국 진입의 기준이 되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을 달성한 나라의 그룹을 일컫는 말이라고 했다. 그해 6월에 드디어 인구 5천만명이 넘어 한국이 그 클럽에 들게 되었다면서 이는 “업그레이드된 한강의 기적”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 명칭이 ‘국뽕’의 일종이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틀린 얘기다. 이명박 정부의 초라한 경제성장 성적을 감추고, 박정희 향수를 불러일으켜 박근혜 후보를 도와주기 위해 <조선일보>가 조작해낸 말이었다. 워낙 족보가 없어서 한국에서만 쓴다. 그 뒤 이 명칭은 2015년에 한국의 국민총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가게 되면서 30-50 클럽으로 바뀌었다.

이 명칭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는 20-50 클럽에 속한다는 나라들이 언제 그 기준에 맞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 최초로 20-50 클럽 멤버가 된 나라는 1987년 일본이었다. 그 뒤 미국(1988년), 프랑스(1990년), 이탈리아(1990년), 독일(1991년), 영국(1996년)이 들었는데 드디어 한국은 2012년에 세계 7번째로 들었다고 추어올렸다.

그런데 어쩌나! 저 나라의 2만달러는 이 나라의 2만달러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2만달러는 불변가격으로 통일해서 비교한 소득이 아니라 경상가격 기준으로 측정된 숫자다. 예를 들어 1988년에야 미국의 인당 소득이 2만달러를 넘었다고 하지만 그 2만달러는 2012년 불변가격으로 대략 3만7천달러에 가깝다. 그런 마당에 1988년 미국의 인당 소득 2만달러를 20년도 더 지나서 한국의 2012년 경상소득과 비교하면 남들이 웃는다.

게다가 <조선일보>는 그해 6월 드디어 인구가 5천만명이 넘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의미나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인구 강국”이니 “인구 경쟁력”이니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근거로 4천만이면 인구 “강국”이 아니고 5천만이면 인구 “경쟁력”이 생기나? 참으로 가소로운 소리였다.

한국 언론은 종종 이런 허튼소리를 한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실없는 소리를 들어도 혀를 차면서 그냥 넘기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하지만 만약 그런 소리를 한 나라의 대통령 경제수석이 한다면 얘기가 다르다. 세계 경기둔화가 한국 경기둔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그의 주장은 큰 그림에서는 맞다. 현 정부의 정책 성과가 부진하니 억울하고 변명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내지 않고 거기서 선방론으로 가버리면 도를 넘는 짓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수석이 <조선일보>의 정치 조작을 통해 탄생한 30-50 클럽을 들고나와 경제성장 선방론을 주장하는 모습은 한편의 부조리 코미디 같다. 현 경제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는 대통령 옆에서 그러고 있으면 국민이 도리어 대통령을 불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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