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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갑질 장군’과 ‘초짜 전술가’의 비극적 만남

등록 2019-11-06 18:46수정 2019-11-07 12:06

박찬주 전 대장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의 극기훈련 필요성” 운운하며 군인권센터 소장이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작 미심쩍은 이유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황교안 대표 아닌가.
“무기를 쓰기 전에 머리를 쓰라.” “리더십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부하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오지 않는 날이 바로 귀관들이 리더를 중단하는 날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어떻게든 임무를 완수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용기다.” 제임스 매티스, 콜린 파월, 노먼 슈워츠코프 등 미군 4성 장군 출신들이 남긴 말이다. 어깨에 달린 별 4개의 묵직한 중량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랜 세월 군에서 쌓은 연륜과 관록이 묻어나온다. 이에 질세라 한국의 4성 장군 출신이 엊그제 귀한 어록을 쏟아냈다. “공관병이 감을 안 따면 누가 감을 따느냐.” “모름지기 군대라는 곳은 불합리한 것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념화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래픽 고윤결
그래픽 고윤결

박찬주 전 대장 역시 한국의 여느 장성들처럼 한-미 동맹의 열렬한 신봉자일 터인데, 정작 군 업무에 관한 인식과 사고의 동맹은 맺지 않은 모양이다. 언어의 품격과 질적 수준이 미군 장성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지휘철학은 아직도 시대착오적 군부독재 시대에 머물러 있고, 부대 운영 방침은 불합리를 정당화하는 전근대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한때 그의 어깨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4개의 별이 아까울 뿐이다.

박 전 대장만 그럴까. 그와 같은 부류의 퇴역 장성들은 수없이 많다. 요즘 ‘태극기 부대’에 재입대해 광화문 전선을 누비며 맹렬히 전투를 벌이고 있는 퇴역 장성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아직도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의 향수에 젖어 산다. 오죽했으면 과거의 ‘공화당’을 떠올리게 하는 우리공화당을 향해 박 전 대장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말했겠는가. ‘좌파 정권 출범 이후 안보가 불안해졌다’는 주장은 이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무기다. 박 전 대장은 “2년 반 전만 해도 세계가 인정하는 강군이던 우리 군이 민병대 수준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들이 현역으로 군을 지휘하던 시절에는 우리 군이 강군이었나?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이야기다. 우리 군은 상시적으로 전쟁을 하는 미군과는 달라 강군인지 아닌지조차 정밀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동안 북한과 크고 작은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김대중 정부 시절 제1연평해전 말고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적도 별로 없었다. 더욱 실소를 금할 수 없는 것은 과거 아군을 향해 총을 겨눴던 전두환·노태우 신군부 핵심세력들이 퇴역 장성들을 지휘하며 안보를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이다. 육군이 해군·공군을 홀대하고, 육사 출신들이 다른 출신 장교들을 배척하고, 육사 출신 안에서도 하나회니 알자회니 하는 사조직을 만들어 끼리끼리 문화를 형성한 것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퇴역 장성들은 현역 시절 ‘무기를 쓰기 전에 머리를 쓰라’는 말과는 달리 북한보다 막대한 국방비를 쏟아부으며 각종 첨단무기 도입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도 아직 ‘자주국방’을 못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 책임인가.

얼마 전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이라는 단체는 9·19 남북군사합의가 북한을 이롭게 하는 합의라며 송영무 전 국방장관과 정경두 국방장관을 ‘이적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들은 여러 군사전문용어를 동원해 9·19 합의의 잘못을 주장하지만 별로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휴전 이래 끊임없이 군사도발을 해온 것은 북한이다. 그런데 북한이 앞으로는 어떤 방법으로도 상대구역을 침입·공격하지 않겠다는 데 합의한 것은 대남 기습도발 포기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제1연평해전 당시 합참의장을 지낸 김진호 재향군인회장)라는 간단명료한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다. 모든 것을 떠나, 장군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전·현직 국방부 장관을 이적행위로 검찰에 고발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 할 짓인가.

사정이 이러한데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박찬주 전 장군을 “귀한 분”이라고 치켜세우며 영입에 공을 들였다. 4성 장군 출신이라는 허명, ‘반문재인’의 상징성, ‘안보 아이콘’이라는 신기루 같은 이미지에 미혹된 탓일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초짜 전술가의 판단 착오만 드러내며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사족 하나. 박 전 대장은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의 극기훈련 필요성” 운운하며 군인권센터 소장이 삼청교육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작 미심쩍은 이유로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은 황교안 대표 아닌가.

편집인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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