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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잃어버린 시야를 찾아서 / 김찬호

등록 2019-11-15 17:46수정 2019-11-16 15:40

김찬호ㅣ성공회대 초빙교수

공원에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나왔다. 아기는 반짝이는 얼굴로 아장아장 돌아다닌다. 이때 엄마의 눈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꽂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동영상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빠져 있거나, 아이의 모습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아이에게 관심을 보낸다는 점에서 전자보다 후자가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아이는 단지 피사체로 격리되어 있을 뿐, 엄마와의 상호작용이나 교감은 없다. 엄마는 영상 기록을 위해 머리를 쓰느라, 가슴으로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한다. 그 시선은 불과 20~30센티미터 앞에 있는 화면에 갇혀 있다.

역사상 인류의 시야가 요즘처럼 비좁아진 적이 없다. 눈이 액정 화면에 파묻혀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전철에서도 승객들의 고개는 거의 다 숙여져 있다. 그런 자세는 척추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정형외과 의사 손문호 원장의 <치매 걸린 거북이는 없다>라는 책에 따르면, 거북목이 수면무호흡증이나 치매의 위험을 높인다. 구부러진 부분에서 혈관 등이 압박을 받으면 뇌에 그만큼 피와 영양분의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디어 과다 사용의 가장 큰 부작용은 역시 시력 저하로, 근시의 급증이 두드러진다. 근시는 안구가 타원형으로 늘어나면서 망막에 초점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는 질환이다. 대개 20대 전반에 진행이 멈추는데 요즘에는 어른이 되어서 증상이 시작되거나 악화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근시 인구가 급증하고 있어서 2050년에는 인류의 절반에 이르며, 고도 근시로 실명 위험에 처하는 인구가 10%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성장기 아이들의 변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한국의 대도시 거주 청소년의 97%가 근시(고도 근시는 12%)로서,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대한안과학회는 초등학생의 근시가 40년 사이에 6배가 늘어났다고 보고한 바 있다. 공부와 스마트폰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종의 생활습관병이라고 할 수 있는 근시는 녹내장이나 망막박리, 황반변성 등 실명으로 이어지는 질환을 동반하기 쉽다. 또한 치매, 우울증, 수면 장애, 동맥경화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시각 정보가 줄어들어 뇌의 자극이 감퇴하고 인지 기능이 쇠약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중국에서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하루 1시간 이하로 억제하거나, 숙제의 양을 일정한 수준으로 제한하면서 청소년 근시 인구를 매년 0.5%씩 줄여가고 있다. 대만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야외 수업과 신체 활동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한다. 장시간 빛을 쬐면 늘어났던 안구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고,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근시의 발병을 억제한다고 한다. 효과를 보려면 1000럭스(보통 실내가 300~500럭스)에서 하루에 2시간 이상 머물러야 한다. 지금 우리의 교과 편성으로는 어렵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점심 식사를 운동장에서 하도록 한다는데, 한국에서는 요원한 이야기일까.

야외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멀리 뻗어나가고, 아득한 풍경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이런 습관은 시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마음의 부피도 키워준다.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을 물리적으로 파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과 나를 연결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탁 트인 벌판에 설 때, 말 그대로 ‘시야’(視野)가 펼쳐지면서 가슴이 열린다. 거기에서 우리는 근시안을 벗고 세상과 인생을 드넓게 조망하게 된다. 이따금 하늘도 올려다보자. 청명한 빛깔로 솟아오르는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남루한 일상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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