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사이언스’(Forensic Science·법의학)는 의학적 방법을 통해 법률적으로 중요한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학문이다. 여기서 유래한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은 법의학의 디지털 버전이다. 컴퓨터와 디지털 기록 매체에 남겨진 증거를 분석해 사실관계를 규명한다.
1970년대 후반 컴퓨터가 상용화되고 저작권·개인정보보호 관련 입법이 이뤄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디지털 포렌식이 도입됐다. 1990년대부터는 디지털 포렌식을 위한 전문기관도 설립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 경찰이 수사에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사용한 이래 검찰이 2008년 대검에 디지털포렌식센터를 설립하면서 수사기관들이 본격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불공정거래를 조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나 자본시장조사단을 운영하는 금융위원회는 물론 임금체불을 적발하는 노동부까지 상당수 정부기관이 디지털 포렌식 장비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대검은 2012년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2015년엔 과학수사부를 신설해 검사장급 조직으로 격상하는 등 조직과 장비 면에서 국내 대표 기관으로 자임하고 있다. 과학수사부에만 150여명이 근무한다. 경찰은 본청에 ‘과장급’ 조직으로 디지털포렌식센터를, 지방청엔 ‘계장급’의 디지털포렌식 조직을 두고 있다. 모두 170여명이 일한다.
청와대 감찰반 출신 수사관이 남긴 휴대전화 포렌식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1주일 가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스라엘 장비까지 도입했다는 검찰이 아이폰 비밀번호를 못 풀자 경찰의 한 전문가는 “포렌식 건수나 경험 면에선 경찰이 앞선다”며 경찰에 넘기라고 했다.
검찰과 경찰의 권력기관 내 위상이 뒤집히기 시작한 건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와 뒤이은 은폐조작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추락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검찰 비리와 ‘정치검찰’ 행태가 드러나면서 참여정부는 검찰의 힘을 빼는 검찰개혁을 시도했다. 15년 만에 다시 ‘수사권 조정’ 등 개혁 입법을 코앞에 두고 검찰이 ‘수정’을 요구하자 경찰은 “우리가 미성년자냐”고 맞받았다. 검경의 ‘30년 물밑 전쟁’도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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