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4일 청와대 사랑채 앞 ‘투쟁 텐트’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이 이상하다. 12월14일 광화문에서 장외집회를 하기로 했다. 10월19일 이후 두 달 만이다. 이 추운 날씨에 당원과 지지자들을 거리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12월11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은데 갑자기 장외집회를 하는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유한국당은 이른바 보수 정당이다. 그런데 대표가 삭발을 했다. 단식하다가 병원에 실려 갔다.
삭발과 단식은 약자들의 마지막 투쟁 수단이다. 기득권 세력인 이른바 보수가 약자들의 투쟁 수단까지 빼앗고 있다. 너무한다.
황교안 대표가 나경원 전 원내대표를 몰아내듯 그만두게 한 이유는 뭘까? 초선 사무총장 임명도 보통 일은 아니다. 황교안 대표는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일까?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2013년 <정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영국 자유당의 역사>라는 책을 썼다. 자유당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의회의 양대 세력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 노동당에 자리를 내주고 갑자기 몰락했다.
노동계급의 부상, 참정권 확대, 아일랜드 독립, 상원 권한 축소 등 영국 사회 내부의 변화와 러시아혁명, 1차 세계대전 발발 등 국제 정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와 단순다수제 선거제도라는 강력한 제도적 방어막 뒤에서 폐쇄적인 독과점 구조를 형성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한국의 거대 정당들, 그 정당들이 유권자의 높은 불신과 혐오, 무관심 속에서도 과연 정치적 생명력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강원택 교수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썼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몰락을 걱정해야 하는 쪽은 자유한국당으로 바뀌었다.
자유한국당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적응이다.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도태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정치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시대의 가치를 제대로 짚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평등’ ‘공정’ ‘정의’에 있다. ‘조국 사태’로 입증됐다. 실천이 어려워서 그렇지, 방향은 옳은 것이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좌파 사회주의라고 비판했다. 평등, 공정, 정의가 좌파 사회주의라는 얘기인가? 황교안 대표는 정책 대안으로 신자유주의 변종으로 보이는 민부론을 제시했다.
경제에 대한 황 대표의 인식은 주 52시간제를 “한국은 더 일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수준이다. 그가 ‘일자리 나누기’나 ‘워라밸’이라는 말을 알까?
한반도에 대한 식견도 마찬가지다. 2018년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 남한과 북한의 대화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의한 필연이었다. 하지만 당시 홍준표 대표는 맹목적 색깔론으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다가 지방선거에서 자멸했다. 공안검사 출신이라서 그럴까? 황교안 대표의 인식도 딱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서글픈 일이다.
이런 야당을 국민이 좋아할 리가 없다. 조국 사태로 여권이 내상을 입었는데도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도 격차는 10%포인트 정도로 다시 벌어졌다.
걱정이다. 자유한국당을 좋아해서가 아니다. 제1야당의 부진은 필연적으로 정부 여당의 나태를 부른다. 정부 여당의 나태는 국정 이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은 황교안 대표에게 달렸다. 2017년 대선에서 패배한 직후 당시 김성태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과 보수 재건을 위한 제언’을 낸 일이 있다.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류는 이류다. 타인의 방식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대중은 정치인이 자기답게 싸우기를 기대한다. 남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만큼 어색한 것은 없다. 어색함을 느낀 대중은 지지를 철회할 뿐 아니라 민망해하고 오히려 자신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자기다운 것이 남과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이 강한 것이다.”
황교안 대표가 새겨야 할 말이다. 전직 법무부 장관, 전직 국무총리답게 싸워야 한다. 점잖게 싸워야 한다. 그래도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오르지 않으면 총선 전에 물러나야 한다. 하나님이 ‘황교안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성한용 ㅣ 정치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