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완
국제뉴스팀 데스크
“젊은이여,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지구촌이라 불릴 정도로 좁아졌지만 세상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이 있고, 아무도 해내지 못한 일도 많다.”(김우중 자전적 에세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1989년 8월)
출간되자마자 세간에 비상한 돌풍을 일으키고 100쇄 넘는 재판을 거듭하며 160만부 이상 팔린 이 책을 교두보 삼아 국내 한 출판사는 출판업 매출액 5위(2018년)로 도약했다. 저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일약 대중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지난 9일 세상을 떠난 그는 1년 중 280일을 해외를 누비고 종종 지구본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세계’로 수식되는 그의 별세 소식은 자본과 노동이 일대 각축을 했던 30년 전 격동을 새삼 돌이키게 한다.
<세계는…>이 나오고 불과 한달 만에 ‘김우중 회장의 자본철학에 대한 전면비판’ 제목을 달고 원고지 400장짜리 장문의 글이 한 월간지(<노동해방문학> 1989년 9월호)에 실렸다. 수배 중이던 투철한 ‘선진 노동자’ 시인 박노해가 단숨에 써 내려간, 베스트셀러 출간 기념 이 ‘선물’을 두고 신문마다 ‘전면적 사상논쟁’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다. 어느 칼럼은 “기업 총수와 노동이론가 사이의 전쟁이다. 이처럼 엇갈린 시각이 어떤 경로를 거쳐 정리되고 화합돼야 할 것인가”라며 혼돈을 자못 심상찮게 진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해는 2년 전 분출한 ‘노동자 대투쟁’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19.8%에 이를 정도로 노동이 고양된 때였다.
“회사를 세운 지 10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빌딩을 갖게 되었다”는 <세계는…>의 자본철학 문장들을 향해, 박노해는 “전세계를 누비는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도 선박도 전자제품도 거대한 빌딩도 이 세계는 너의 것이다. 국경을 넘어 쉴 새 없이 돌리는 공장의 굉음 속에 빛나는 성취도 너의 것”이라며 반어로 분노의 ‘축시’를 보냈다. “나는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 하루가 30시간이나 40시간쯤 되었으면 좋겠다.” 새벽녘 창가로 비쳐드는 옥포만 달빛을 바라보던 김우중의 꿈이었다. 하지만 이미 새벽 조출, 철야·특근을 밥 먹듯이 하느라 항상 눈이 벌겋고 따가운 노동자에겐 단칸방 꿈조차 가닿기 힘든 소망이었다. 고약하게도 그건 차라리 숙명이었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세계시민이지만, 자본가에게 ‘넓은 세계’는 일종의 권력 기반이다. 언제든지 간편한 서류가방 하나만 든 채 지구상 곳곳으로 가볍게 여행을 떠나 공장을 철수·이전할 수 있다. 발이 무거운 노동자한테 그 세계는 유령이다. 가족·친구와 헤어져야 하고 낯선 땅, 낯선 말은 두렵다. 이주노동자의 설움도 겪어야 한다. “모든 종류의 물건 중에 인간을 이동시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애덤 스미스는 250년 전에 말했다.
대우실업 설립(1967년) 무렵, 또 다른 ‘젊은’ 현대자동차(1967년)·포스코(1968년)·삼성전자(1969년)가 뒤따라 세워졌다. 자본에는 국적이 없지만 자본가에게는 국적이 있기 때문일까? 지난 50여년, 굴지의 ‘한국 주식회사’ 창업주들의 세계 행로를 우리는 감동적으로 회고해왔다. 하지만 2018년 임금근로자 총 2014만명 가운데 주로 ‘세계’와 연결된 300명 이상 거대 사업장(249만명)은 노조 조직률이 50.6%에 육박하고, 이곳에 뿌리박은 대다수 집단인 300명 미만 사업장(1765만명)은 1.7%에 불과하다. 시인은 당시 “노동자여 전세계는 우리의 것”이라며 김우중과 호기롭게 맞붙었지만, 이젠 누구도 더 이상 ‘각축’을 말하지 않는다. <세계는…>을 추억하며 우리가 씁쓸한 까닭이다.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