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 ㅣ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지난달 아이폰을 잃어버렸다. 나는 동묘에서 산 통 큰 정장을 즐겨 입는데, 바지 주머니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나가서 점심 먹고 왔더니 휴대폰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을 거쳐 수용의 단계까지 빠르게 도달했다. 나아가 상실을 전화위복으로 삼고자 했다. 어차피 잃어버린 거 이참에 피처폰으로 바꿔보자!
안 그래도 스마트폰에 환멸이 나던 차였다. 아이폰은 ‘스크린타임’이라는 기능이 생겨서 친절하게도 내가 하루에 몇시간 낭비하는지 알려주었다. 네다섯시간은 기본이었다. 운전할 때도 신호만 걸리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무한 루프였다. 사이버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내 전두엽을 장악했다. 정보 과잉, 티엠아이(TMI)의 시대였다. 강아지, 고양이 동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휴대폰을 휙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스마트폰의 노예였다. 주인님을 잃어버린 것은 슬퍼할 게 아니라 기뻐할 일이었다.
내친김에 동네 휴대폰 가게로 달려갔다. “피처폰 있나요?” 나는 아주 싼 값을 기대했으나 스마트폰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나름 최신형이라 5핀 충전기를 썼다. 카카오톡이 가능한 터치스크린 폴더폰도 있었다. 다 필요 없고, 전화랑 문자만 되는 걸로 달라고 했다. ‘효도폰’으로 나온 게 딱 하나 있었다. “월 5천원만 더 내면 스마트폰 쓸 수 있는데 정말 이걸로 하시겠어요?” 나는 비장하게 답했다. “네. 돈 때문이 아닙니다.”
해방! 드디어 해방이었다. 폴더폰은 일단 작고 가벼웠다. 통화를 마치고 접을 때 “탁!” 소리가 찰졌다. 전방 카메라가 없어서 셀카는 폰을 뒤집어 찍어야 했다. 싸이월드 방명록에 글을 남겨야 할 것 같은 감성이 샘솟았다.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힙스터의 끝이었다.
한줄평. 나는 편한데 주변 사람은 불편했다. 최대 장점은 공상하는 시간을 되찾은 것이었다. 눈과 귀로 정보를 소비하지 않으면서 혼자 딴생각할 겨를이 생겼다. 화장실에 앉았을 때, 이동할 때, 식사 중 일행이 자리를 비웠을 때, 침대에 누웠을 때 등. 나처럼 창작이 직업인 사람에게는 영감의 원천이 되는 귀중한 여유였다. 책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소통의 빈도는 줄고 농도는 늘었다. 카카오톡을 이메일처럼 몰아서 컴퓨터로 한번에 답장했다. 에스엔에스(SNS)도 작업실에 출근했을 때 일괄적으로 관리했다. 문자를 치는 게 불편해서 간단한 일도 전화를 걸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 자주 들었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 오롯이 앞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업무 차질이 너무 컸다. 은행일이 번거로웠고, 인스타그램 기능이 제한적이었으며, 구글 드라이브에 접근할 수 없었다. “집에 가서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가 다반사였다. 회사에서 단톡방에 올린 내용을 나만 따로 받아 봐야 했다. 동료들의 불만이 쌓였다. 내가 혼자 예술만 하고 사업을 안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건 대표로서 책임 회피였다. 해방이 아닌 도피였던 것이다.
그렇게 한달. 뮤직비디오 촬영차 목욕탕에 갔다가 아뿔싸. 열탕에 폰을 빠뜨렸다. 생돈 주고 폴더폰 다시 살 염치가 없어서 아이폰으로 바꿨다. 엘티이(LTE)가 연결되는 순간 문명 세계에 재접속한 기분이었다.(지금 이 글도 아이폰으로 쓰고 있다.) 역시 기술은 잘못이 없었다.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의 문제였다.
음식이나 연애처럼 스마트폰에도 철학이 필요하다. 디지털 미니멀리즘이 답인가? 하루 종일 내 손만 붙잡고 있는 이 애물단지를 어찌할꼬. 한달간의 도피는 실패로 끝났지만, 노예 전범선의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