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자신의 성추행 비위 추문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 검사를 불리하게 전보인사 시키도록 한 직권남용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판결문을 모두 읽어보고 유사 판례를 검토해보았다. 여성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 이 대법원 판결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치지청(차장검사는 없고 부장검사가 있는 검찰 지청) 경력검사 배치제도’라는 엄연히 존재하는 인사기준이 절대적·일의적 기준이 아니라 단지 인사권자가 고려할 수 있는 ‘배려’의 차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인사에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가. 재판부는 “검사의 전보인사에 광범위한 재량이 인정되고, 인사기준 역시 다양한 기준과 고려사항들을 종합적으로 참작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검사의 전보인사는 다수 인사 대상자들의 보직과 근무지를 일괄적으로 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상호연쇄적인 영향을 미치는 등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까지는 상식이다.
문제는 그 ‘사정’을 봐주는 데 있어서 차별이나 특혜, 불이익이 있었는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있다. 법무부 검찰국장 출신인 박균택 법무연수원장은 대법원에 이 사건은 자신이 인사청탁을 한 결과 생긴 우연한 일이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자신이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발령 날 예정이었던 고교 후배 C 검사의 사정(아이가 대도시 중학교로 진학을 원한다는 내용)을 듣고 수긍할 만하다고 생각하여 당시 검찰과 인사담당 검사에게 전화로 인사부탁을 했고 서지현 검사의 통영지청 발령은 그 인사부탁의 연쇄적 결과였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한 결과였다고 해도 피해가 발생했다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놀랍게도 이 진술서의 목적은 “안태근은 무죄”라는 구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진술서 제출 건에서 가장 황당한 것은 이 모든 것은 관행이고 재량이므로 피해가 발생했어도 위법이 아니라는 확신이었고,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금지라는 법률을 철저하게 무시한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2심 판결문에 명시된 수사기록에 따르면 박균택의 후배 검사에게 안태근의 인사 관련 실무담당자였던 신아무개 검사가 먼저 전화를 걸어 “고향이 광주인데 특별히 광주를 지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광주는 신청지로 낸 4개의 대도시에 해당되지 않아 따로 전화해서 챙겨줄 정도로 세심하게, 종합적으로 인사 배치를 했다고 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째서 그런 배려가 피해자에게는 일절 적용되지 않았을까. 종합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인사조치였지만, 절대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위법해서는 안 된다.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에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검찰조직은 이미 안태근 성추행 사건을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최소한 피해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초래하는 결과는 피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1999년 도입되어 현재까지 그 효력을 명백하게 유지하고 있는 경력검사 부치지청 배치제도를 무시하면서까지 조직의 구성원 누가 보기에도 경험칙상 인사상 불이익에 해당하는 조치를 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그러한 인사조치가 인사권자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너무나 두루 비상식적이어서 아직도 이 결과를 믿을 수가 없다.
비상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음모론이 횡행한다. 박근혜 정부 집권기에 음모론이 대중 정치의 지배적 감정이었던 이유다. 지금은 어떤가. 일부 정치인들은 이 판결을 두고 인사권자의 재량허용범위에 대한 법원의 가이드라며 ‘정치적 셈법’을 공공연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음모론자가 되고 싶지 않다.
1998년 서울대 교수에 의한 조교 성희롱 판결문에서 대법원은 대한민국과 서울대 총장을 대상으로 한 건에 대해서는 국가와 학교가 가해자의 행동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일부 파기하고, 가해 행위자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확정한 바 있다. 안태근 성추행 문제에 대해 검찰조직은 감찰을 통해 2010년 12월에 인지하고 있었으니 인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대법원 판결은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이 아니라 인사상 불이익 조치에 대한 책임을 행위자뿐만 아니라 공범, 나아가 사용자에게 확대하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부디 그러길 바란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