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기 ㅣ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공적자금관리위원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판매와 관련한 제재 절차가 진행 중이다. 두 은행은 ‘사기극’으로까지 지목된 라임펀드 판매 1·2위 은행이기도 하다. 제재 절차는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 금감원장, (사안에 따라) 금융위원회 결의 차례로 진행된다.
이번 제재가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제재 대상 인물이 해당 금융지주회장 재임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금융지주이사회는 손태승 현 회장이 중징계 제재 대상이라는 금감원의 사전 통보에도 불구하고 손 회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추천했다. 중징계 대상자가 연임 후보로 선정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이유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임원 자격에 관한 ‘적격성(fit and proper) 심사’가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임원(최고경영자 포함)은 은행의 안전하고 건전한 경영을 담보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금융당국은 임원 후보가 그런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사전에 심사(적격성 심사)한다. 적격성 심사를 당국이 주관하는 이유는 은행 임원이 안전하고 건전한 결정을 내려야만 은행과 은행산업 전체의 건전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금융행위감독청(FCA)은 후보자의 전문성, 청렴성, 재무 건전성을 심사한다. 인터뷰까지 실시한다. 제재 대상자가 사전심사를 통과할 가능성은 없다. 유럽중앙은행은 ‘지식과 숙련 및 경험’, ‘평판’, ‘이해상충’, ‘충분한 시간 할애 가능성’, 그리고 ‘이사회의 집단적 적정성’ 등 5개 부문에 걸쳐 유럽연합(EU) 회원국 주요 은행의 임원 및 이사 후보가 자격을 갖추었는지 사전심사한다. 문제의 인물을 최고경영자 후보로 추천했다면 그를 추천한 이사들이 과연 적격성을 갖췄는지 추궁당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선 왜 벌어진 것일까? 한국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5조(임원의 자격요건)1항8호를 통해 “금융회사의 공익성 및 건전경영과 신용질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임원에서 배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령은 “해당 금융사 혹은 자회사 등의 자산운용과 관련하여 특정 거래기업 등의 이익을 대변할 우려가 있는 사람”으로 기피인물의 범위를 한정시켰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적격성 심사가 공익성, 건전경영, 평판 등은 따지지 않고 이해상충만 보는 것에 그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법률은 5조1항7호를 통해 금융위원장이나 금융감독원장의 중징계 제재를 받은 사람은 재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다. 사후적 적격성 심사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제재 당사자가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제재의 확정이 미뤄진다. 결국 금융산업 건전성을 위한 핵심적 제도인 적격성 심사가 사전·사후적으로 무력화될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영국 금융행위감독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4월~2012년 22만7천명에 대한 적격성 심사가 있었고 30명이 거절되었다. 후보자 7천명은 심사 도중 자진사퇴하였다. 3% 정도만 걸러졌지만 탈락 가능성이 있는 후보가 애당초 지원하지 못하게 막는 효과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 소비자는 물적·지적으로 압도적인 금융사와 대등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 금융사가 소비자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이 지켜지는지 엄격한 내부통제 장치를 갖는 것은 금융 안정을 위한 기본질서라 할 것이다. 파생결합펀드 사태와 제재 절차를 보면 이런 기본질서가 흔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국은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하고, 금융사와 임원 및 이사회의 각성 또한 절실하게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