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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연민과 배려 사이 / 은유

등록 2020-01-17 18:11수정 2020-01-18 02:32

은유 ㅣ 작가

한동안 에스엔에스 계정에 아이들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두 아이가 초상권 침해를 주장할까 봐 눈치가 보였고 그보단 다른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목숨을 잃은 고 김동준, 이민호군 이야기를 책으로 썼는데 그 아이들이 내 큰아이 또래고 유가족인 부모들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하다. 인터뷰 작업을 하면서 같이 눈물 콧물 흘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내 자식의 밥을 챙기는 일도 어쩐지 죄스러웠다.

세상이 이렇게나 불의하고 부실하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그런 세상에서 나는 ‘아직’ 안전하고 안온하다. 아이에게 고기반찬을 먹이고 하루에 3명이 일하다가 죽는 ‘헬조선’에서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길 바라며 학업을 뒷바라지하고 가끔 휴가도 간다. 빤한 일상이지만 그조차 단숨에 빼앗긴 이웃의 생생한 고통을 듣고 나면, 삶의 허리 베고 들어온 죽음의 실체를 목도하고 나면 문득 나 사는 일이 어색해진다.

몇 달 전엔 나의 큰아이가 졸업전시회를 했다. 집안 재정 곡선이 최저점을 치던 시기에 대입을 치른 아이는 내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학업을 마쳤다. 정신없이 슬퍼하고 기뻐하던 날들을 지나 생의 한단락을 매듭짓자 만감이 교차했다. 나는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기념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리고 ‘페친’인 동준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큰아이를 축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동준이 생각이 났다고. 인터뷰에서 어머님이 들려준 말, “내 앞에서 쉬쉬하며 애들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눈치 보지 말고 말하고 나도 동준이 얘기를 편안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떠올리며 사진을 올렸다고 했다. 동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세상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비장한 다짐까지 보탰다. 곧 숫자 1이 사라지고 답이 왔다.

“잘하셨어요. 일상을 나누지 못하면 친구하기 어렵잖아요.”

아! 아무리 구구하게 풀어내도 설명되지 않던 복잡한 마음이 한 줄로 명쾌하게 정리됐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자, 산 자식 얘기하듯 죽은 자식 얘기도 하고 싶다는 것을 난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생활에선 감당하지 못했던 거다. 내 미안함이 미안했다. 어설픈 연민을 경계해도 세심한 배려엔 도달하지 못한 채 헤맨다. 공감과 이해는 매뉴얼이 없다. 매 순간 묵묵하고도 아슬아슬한 실천만 있을 뿐.

지난 연말엔 동준이 얘기를 담은 책이 네 군데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희소식이 나온 날이 마침 동준이 엄마 생일이었다. 그는 아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기사를 검색하는데 기사를 하도 봐서 사건 당시 인턴기자 이름을 외우고 있을 정도다. 따끈한 소식이 좋은 선물이 되겠다 싶어 축하 인사에 곁들여 ‘올해의 책’ 관련 기사 링크를 보냈다. 다음날 응답이 왔다.

“생일 그게 뭐라고 우리 부부는 생일이 동준이 기일만큼 힘드네요.” 그는 동생들 축하에 웃으면서도 가슴이 저몄고 즐거운 시간 보냈지만 돌아간 후 터져버린 둑이 되어 한참을 우느라 답이 늦었다고 했다. 현자같이 의연하던 사람이 다친 새처럼 작아져 있었다. 그 며칠 후 세월호 유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들렸다. 고인은 아들을 떠나보낸 뒤 남은 가족을 돌보기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으나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갔다. 괜찮아 보이는 것과 괜찮은 것의 간극은 삶과 죽음의 경계만큼 멀고도 가까운 것이다.

올해는 세월호 6주기고, 1월20일은 동준이 6주기다. 생일이 지나면 생일만큼 힘든 기일이 오고 기일이 지나면 기일만큼 괴로운 명절이다. 내 이웃이 슬픔의 둑이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져내리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상을 나누는 일상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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