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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풍경] 지구촌 보건 전쟁에 등판한 박테리아

등록 2020-01-21 18:10수정 2020-01-22 02:37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우리와 한몸인 듯이 공생하는 많은 장내 미생물(박테리아)이 우리 몸에 살듯이, 곤충 몸에도 갖가지 박테리아가 산다. 그중에는 독특하게도 많은 곤충 종의 세포 안까지 들어가 세포질에 자리를 잡고 함께 진화하며 공생하는 것도 있다. 볼바키아(Wolbachia)라 불리는 박테리아는 세포 속에 산다는 점만 독특한 게 아니다. 1924년 발견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요즘 볼바키아는 뎅기, 지카, 치쿤구니아 같은 위험한 바이러스 감염병을 물리칠 공중보건의 지렛대 같은 존재로 떠오르고 있다.

볼바키아에 관한 세상의 관심도 커졌다. 과학잡지 <네이처>는 올해 눈여겨볼 과학기술계 화제 중 하나로 볼바키아 감염 모기를 이용한 바이러스 감염병 퇴치 사업을 꼽았고,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 사업을 벌여온 세계모기프로그램(WMP)의 책임자 스콧 오닐 교수(오스트레일리아)를 “2019년에 희망을 퍼뜨린 다섯 사람” 중 하나로 소개했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사실 볼바키아의 등장은 긴 시간을 거쳤다. 1971년 볼바키아가 번식을 위해 숙주 곤충의 암수컷 성비를 조절해 ‘성비 교란’을 일으킨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기이한 박테리아는 많은 과학자의 연구 대상이 됐다. 그러던 중에 2008년 또 다른 능력이 발견됐다. 오닐 교수 등은 볼바키아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냈다. 볼바키아에 감염된 곤충에서 바이러스 저항성이 높게 나타났고 볼바키아가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한다는 게 밝혀졌다. 이후 볼바키아를 이용한 공중보건 전략이 구체화했다.

볼바키아는 많은 곤충의 몸속에 살지만 위험한 바이러스를 옮기는 이집트숲모기 몸에는 거의 살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이집트숲모기의 수정란에다 볼바키아를 집어넣어 대대손손 모기 후손과 볼바키아가 공생하게 한다면? 볼바키아는 모기 몸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것을 막을 테고, 그래서 모기가 사람을 물더라도 바이러스 감염은 크게 줄 것이다. 효과는 어느 정도 검증됐다. 2011년부터 세계모기프로그램은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등 12곳에서 볼바키아 감염 모기를 풀어놓는 야외시험을 벌여 질병 감소를 확인해왔다. 올해는 인도네시아에서 뎅기열 확산을 막는 야외시험이 추가된다.

그동안 바이러스 감염병을 막는 공중보건 대책은 ‘매개 모기’ 퇴치에 중점을 두어왔다. 세계보건기구(WHO)도 매개 모기를 퇴치하는 위생방제 대책을 강조해왔고 유전자변형 모기의 활용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볼바키아 전략은 모기 몸에다 공중보건 전쟁의 새로운 참여자를 개입시킴으로써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새로운 방식이다. 볼바키아는 지구촌 골칫거리를 해결할 안전한 해법으로 자리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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