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원 ㅣ 도쿄 특파원
“날개가 있으면 날아갈 것 같다.”
조선여자근로정신대(근로정신대) 피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일본 시민들이 하는 시위인 ‘금요행동’이 지난 17일 오전 500회를 맞았다. 이날 저녁 도쿄에서는 피해자인 91살 양금덕 할머니가 참석한 가운데 ‘500회 금요행동’ 기념 실내 집회가 열렸다. 할머니는 상기된 표정으로 참석자들을 바라보며 “고맙다”고 말했다.
금요행동은 일본 시민단체인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나고야 지원회)이 매주 금요일 오전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벌이는 시위다. 나고야 지원회는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서 강제노동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도우려고 1998년 결성됐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의 대표적 전투기인 ‘제로센’을 만든 미쓰비시중공업은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전라남도와 충청남도 출신 10대 초반 소녀들을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명목으로 동원했다.
금요행동 자체는 2007년 시작됐다. 양 할머니를 포함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이 2심에서 패소 판결을 받자, 나고야 지원회가 소송 외적인 방법으로도 해결 방안을 찾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응했던 2010~2012년에는 금요행동이 잠시 중단됐는데, 이 시기를 빼면 10여년간 하고 있다.
다카하시 마코토 나고야 지원회 공동대표는 500회 기념 집회에서 “금요행동을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겠다. 한발씩 앞으로 더 나아간다는 생각으로 해왔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낸 소송 당시 변호인단이었던 우치카와 요시카즈는 “모두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투쟁을 해왔다”고 돌아봤다.
집회에는 금요행동을 다룬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나고야의 바보들>이 축약 상영됐다. 임용철 감독이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연대 활동”에 마음이 끌려서 만든 영화다.
영화 제목대로 이들의 활동은 “바보” 같을 정도로 우직하게 이어져왔다. 금요행동은 아침 일찍 시작된다. 출근길 시민들에게 근로정신대 피해 문제 진실을 알리는 전단을 배포하는 활동도 같이 하기 때문이다.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시나가와에 있을 때인 지난해 12월까지는 아침 8시15분 시나가와역에서 선전전을 했다. 이후 오전 10시30분부터 본사 앞 시위를 했다. 미쓰비시중공업 본사가 1월부터 마루노우치로 이전한 뒤에는 아침 8시30분 외무성 앞에서 전단 배포를 시작하고, 이후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시위를 한다. 일본 시민 중에는 격려하는 이도 있지만 차가운 눈길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혀를 차고 가거나 “너 조선인이지”라고 말하는 이도 숱하다.
나고야 지원회는 500회 전부에 대해 기록을 남겼다. 참가자는 평균 4~5명으로 나고야에서 2~3명이 올라오고 도쿄와 인근 지역에서 3~5명이 합류하는 식이었다. 가장 적을 때는 2명이 금요행동을 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10년 세월 금요행동을 이어온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500회 금요행동을 맞아 한국 시민단체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회원 20여명이 방문단으로 일본을 찾았다. 집회에서 한국 방문단은 “바보의 길을 배우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금요행동은 앞으로 얼마나 더 계속될지 모른다. 근로정신대를 포함한 강제동원 문제가 지난해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 뒤에도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91살인 양 할머니가 또 일본을 찾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피해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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