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상봉, 씨알의 철학] 선거철 경제지표만 따지는 이들에게

등록 2020-02-11 18:17수정 2020-02-12 02:35

경제민주화의 길 1

다시 선거철이 되었다. 선거는 국민의 대표를 선택하기 위해 치러진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결과일 뿐이다. 그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선거의 기능과 효과는 새로운 의제의 제시다. 시민의 대표로 선택받기 위해서는 선택받아야 할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 이유는 나라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바꾸겠다는 설계도로 제시된다. 그 설계도가 설득력이 있다면 선택받을 것이고 설득력이 없다면 외면받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선거는 상이한 설계도를 두고 다투는 선의의 경쟁이다. 그런 경쟁 속에서 정치는 발전하고 나라는 조금씩 새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정당과 유권자들이 모두 설계와 형성보다는 심판에 골몰한다. 물론 야당 심판이든 정권 심판이든 심판할 이유가 있으면 해야 한다. 그것도 선거의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심판은 설계도 아니고, 형성도 아니다. 그건 그냥 머슴을 집에서 내쫓는 일이거나, 낡은 집을 부수는 일일 뿐이다. 머슴이 주인을 속이면 쫓아내야 하는 것도 맞고, 집이 낡았으면 부숴야 하는 것도 맞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머슴을 바꾼다고 비가 새는 집이 새 집이 되는 것도 아니고, 낡은 집을 부순다고 그 자리에 새 집이 들어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형성의 의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학 평준화를 통해 교육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경제민주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재벌기업만이 아니라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법인기업의 지배구조를 민주화하는 것, 그리하여 노동자들을 기업의 임금노예에서 기업의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서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 이를 위해 이제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되묻는 사람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사유재산인데 그것의 경영권이나 의사결정권을 어떻게 노동자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오늘은 이론적 원칙은 제쳐두고 다만 외국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독일에서는 히틀러 치하에서 금지되었던 노동조합이 재건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의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한스 뵈클러는 독일 노동운동의 두가지 핵심적 의제를 제시했다. 하나는 노동계급 내부를 향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단일 노동조합의 원칙이었다. 노동계급의 참된 연대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여럿이면 안 된다는 것이 단일 노조 원칙이었다. 다른 하나는 외부를 향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기업에서 노사공동결정의 원칙이었다. 이 두번째 원칙에 따라 독일의 노동조합은 주식회사를 비롯하여 모든 법인기업의 이사회에서 이사들을 주주와 종업원이 동등하게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했다.

전쟁이 막 끝나고 연합군의 분할 점령 아래 아직 정부도 수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엄청난 요구를 관철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의 저항도 문제였지만 노사공동결정제도라는 것은 진보진영에서 여전히 권위를 잃지 않고 있었던 마르크스의 경전에는 없는 내용이었으므로 이론적인 뒷받침을 받을 수 없었던 것도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마르크스가 요구했던 것은 생산수단의 사회화, 쉽게 말해 기업의 국유화였다. 그런데 노사공동결정권이란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게다가 바다 건너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처음으로 단독 집권하여 전광석화처럼 은행과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있었다. 그런 시절에 독일의 노동운동가들은 국유화가 아니라 공동결정권을 요구했던 것이다.

야당이었던 사민당은 노조와 같은 보조를 취했으나, 집권 여당은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3분의 1 이상 허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노조는 총파업을 통해 요구를 관철하려 했으나 한 나라의 경제체제를 결정하는 일이 협박과 투쟁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노조와 정부 그리고 기업은 결국 타협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탄광과 철강 산업에 국한해서 노사 간에 완전한 동등권을 법제화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기업 이사회를 주주 대표 5명, 종업원 대표 5명 그리고 양자 합의 아래 중립적 인사 1명으로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동결정법’이 1951년 5월 연방의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리고 1년 뒤 제정된 ‘사업조직법’은 전 산업에서 500인 이상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의 경우,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3분의 1 파견하도록 규정했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통해 탄광과 철강 산업의 자본가들은 기업이 국유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고 노동자들은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노사가 공동결정을 하게 되면 기업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겠는가?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전후 독일의 경제부흥의 역사를 보면 그런 걱정은 기우인 것이 분명하다. 1976년, 독일 의회는 공동결정법이 전후 독일의 경제부흥에 긍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판단하여 종업원 2천명 이상의 모든 법인기업의 이사회를 같은 수의 주주 대표와 종업원 대표로 구성하도록 하는 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그 뒤 독일의 경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내가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독일은 파업이 거의 없기로 유명한 나라라는 말은 덧붙이고 싶다. 거기서는 노동자 대표가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파업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경제 문제에 대해 언론은 거의 모두 경기가 좋다 나쁘다는 말밖에 할 줄 모른다. 유권자들 역시 자기가 피부로 느끼는 것이 경제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세계가 하나로 묶여 돌아가는 오늘날의 경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정말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경제 문제는 오르락내리락하는 눈앞의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거시적인 경제체제의 개선이다. 이를테면 2017년 서울시에서 처음 시행된 공공부문에서의 노동이사제도는 그사이에 광주, 인천, 경기, 경남으로 전파되었고, 울산과 부산에서도 조례가 제정되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비록 민간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의 일이고, 아직은 노동이사의 권한부터 너무나 미미해서 노사공동결정이라는 말을 하기도 쑥스럽지만 거대한 변화도 처음엔 대개 나비의 날갯짓처럼 미미한 법이다. 그 미미한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관심과 의지에 달린 일이다.

김상봉 ㅣ 전남대 철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1.

[사설] 여당·보수단체 민원이 100%, 이런 선방위 필요한가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2.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3.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사설] 인적 쇄신 한다며 불통·비선 논란만 자초한 윤 대통령 4.

[사설] 인적 쇄신 한다며 불통·비선 논란만 자초한 윤 대통령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5.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