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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혐오 뒤에서 웃는 자들 / 홍성수

등록 2020-02-20 18:27수정 2020-02-21 02:06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최근 몇주 동안은 트랜스젠더 군인 및 트랜스젠더 여대 입학 논란, 그리고 코로나19 등 초유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졌다. 찬반양론이 뜨겁기도 했고 공포와 두려움에 신문을 들춰보거나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시민들이 늘어났다. 사실관계를 철저히 파악해서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이겠지만,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보도할수록 무조건 좋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문제에 부딪혔을 때, 특히 그것이 두려움과 공포를 야기하기 쉬운 문제인 경우 대중은 부정적인 생각을 쏟아내곤 한다. 난민, 이주자, 성소수자 등 소수자 문제나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HIV/AIDS), 코로나19 등 전염병 이슈가 대표적이다. 근거가 있건 없건, 바람직하건 바람직하지 않건, 대중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 팩트를 어떤 그릇에 담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정한 관점과 판단 없이 ‘여과 없이 사실을 전달한다’는 것에만 맹목적으로 집착한다면 언론과 인터넷 게시판의 차이는 사라질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이 구분되지 않는다면 언론이 따로 있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은 ‘혐오’라는 열쇳말로 집약된다. 혐오에는 몇가지 유형이 있다. 현대사회에서 각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점점 불안해지면서 넓은 의미의 ‘안전’ 문제에 더욱 민감해지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 안전에 대한 욕구는 안정된 일자리나 주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나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갈망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자체는 정당한 관심이자 요구이지만, 이러한 요구를 배타적으로 추구하면서 타자의 안전이나 권리는 안중에도 없을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혐오주의자들이 부추기고 나서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이 혐오라는 사회현상으로 폭발한다. 그들의 구호는 “저들이 사라져야 당신들이 살 수 있다”로 집약된다. 그렇게 문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몰아가며, 안전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로 떠오른 혐오 현상이다. 혐오는 한편으로는 부당하게 책임을 전가당하는 피해자 집단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문제가 있지만, 그 근원이 되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실익조차 없다. 난민 수용을 거부한다고 치안이 좋아질까? 트랜스젠더를 포용하면 군대와 대학의 안전이 위협을 받을까? 중국인 혐오로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을까? 오히려 혐오는 진짜 책임 있는 자들을 웃게 만든다. 안전을 내세워 소수자 혐오에 동참하는 와중에,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숨어버린다.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고 당선된 정치인들, 치안에 책임이 있는 치안당국, 방역을 담당하는 방역당국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를 쫓아내자”는 섬뜩한 구호들만 남는다. 서양에서는 이때 “제가 쫓아내겠습니다”라고 나서는 사람들을 ‘극우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책임 있는 언론의 과제가 이 구도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일 리 없다. “싫어요? 좋아요?” “반대해요? 찬성해요?”라고 묻는 대신에 “왜 싫은지”를 물어야 하고, 그 싫음의 이유가 되는 사실들이 과연 정당하게 형성된 것인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공정성’에는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이렇게 성찰적으로 사안에 접근해야 한다는 과제가 담겨 있다. 사실 새로운 얘기는 아니다. 저널리즘 교과서에도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공정성’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방송법, 방송심의규정, 한국기자협회의 윤리강령과 인권보도준칙, 한국피디연합회의 윤리강령, 언론중재위원회 시정권고 심의기준에도 언론의 책무는 중립성 뒤에 숨지 않으며, 혐오와 차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라는 준엄한 원칙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코로나19 국내 감염자가 늘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부 언론에서는 감염자들의 나이, 성별, 직업, 거주지, 최근 동선까지 자세히 보도한다. 이 중 ‘방역’의 관점에서 유의미한 정보는 무엇일까? 누구나 알고 싶은 정보일 수 있고 이미 취재된 사실일 수도 있지만, ‘보도 가치’가 있는 정보는 무엇인지, 그 사실관계를 어떤 맥락으로 담아낼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성찰하는 언론에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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