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

등록 2020-03-01 18:49수정 2020-03-02 13:51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역설적 표현입니다만, ‘재난의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난은 지옥이지만, 그 지옥 속에서 낙원의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지요. 미국 사회학자 찰스 프리츠는 자신의 2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재난 연구에 몰두한 끝에 재난이 가져오는 ‘공동체적 일체감’에 대해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위험과 상실, 박탈을 함께 겪음으로써, 집단적인 연대감이 생기고, 친밀한 소통과 표현의 통로가 나타나며, 든든한 마음과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려는 의지가 샘솟는다는 것이지요.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책에서 프리츠의 그런 관점을 이어받아 다섯 건의 대재난을 탐사한 후 비슷한 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오해의 소지를 염려해 “재난을 환영하자는 게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재난에서 나타난 ‘희망과 관용과 연대의 힘’이 평소에도 작동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세상은 그런 기반 위에 세워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일상적인 고통과 외로움, 위기의 순간에 살인적인 두려움과 기회주의를 낳는 오랜 분열을 일소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은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게 만드는 재난이기에 다르지 않으냐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음속의 연대까지 끊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공포감을 갖는 동시에 강한 ‘공동체적 일체감’도 느끼고 있지 않나요? 그간 우리 사회는 정치적 분열과 증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습니다만, 이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그런 분열과 증오는 비교적 하찮은 것임을 깨닫게 되지 않았나요?

그 깨달음이 일시적인 것으로 증발되지 않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요? 잠시 이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 이야기는 피하려고 애를 쓴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라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달라져서 서로 얼굴을 붉혀가면서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니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들을 열거해 봅시다. 전체가 10이라면 우리는 9개에 대해선 거의 같은 의견을 갖고 있으면서도 단 하나의 차이 때문에 싸웁니다. 그 하나의 차이가 사회체제의 근본을 바꾸는 문제에 관한 것이라면 나머지 9개를 합한 것보다 훨씬 큰 무게를 갖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적대적입니다. 온갖 비난과 욕설마저 불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걸까요? 정치는 사회적 문제 해결의 수단일 뿐입니다. 비슷한 목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수단의 차이를 놓고 그렇게까지 싸워야 하는 걸까요? 그 수단에 자신의 밥그릇 문제가 걸려 있는 사람들이 싸우는 거야 이해한다 치더라도 그런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시민들마저 반대편에 대해 혐오의 감정마저 느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든 국민의 삶에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유로 정치에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을 자세히 뜯어보면 대부분 싸움에 집중돼 있습니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냐, 어떤 전략과 전술로 맞받아치느냐, 누가 이기고 지느냐 등과 같은 드라마 요소들이 조명을 받지요. 여기에 정치적 이슈의 개인화가 이루어지면서 희로애락이 흘러넘치는 ‘휴먼 드라마’의 세계가 전개됩니다.

싸움 구경만큼 재미있고 신나는 건 없다는 속설은 패싸움의 경우에 더욱 빛을 발하지요. 그런데 패싸움은 그 속성상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 아닙니다. 무조건 자기편이 이기는 것만이 정의와 공정의 기준이 됩니다. 자기편의 장기적 이익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개별 사안에 대한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이지만 남이 하면 불륜이 되는 ‘내로남불’이 양산되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정치는 해결의 수단이기는커녕 ‘공멸을 위한 자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로 협력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을 갈가리 찢어놓는 분열과 증오의 굿판으로 내몰고 있지 않은가요? 영어로 뜻풀이를 해보자면, ‘재난’(disaster)은 ‘별’(astro)이 ‘없는’(dis) 상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수렁 속에서도 별은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가 빠진 재난의 수렁 속에서 ‘희망과 관용과 연대의 힘’이라는 별을 보면서 극복의 의지를 다져나가는 동시에 새로운 정치와 삶의 방식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1.

[사설] ‘김건희’ 위해 “돌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2.

김 여사가 대통령 같은 나라 [뉴스룸에서]

[사설]‘해병대’ 수사 방해하려고 공수처 인사 질질 끄나 3.

[사설]‘해병대’ 수사 방해하려고 공수처 인사 질질 끄나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4.

학교예술강사 예산 72% 삭감…‘K-컬처’ 미래를 포기하나 [왜냐면]

윤 대통령의 ‘부하’를 자처하는 최재해 감사원장[아침햇발] 5.

윤 대통령의 ‘부하’를 자처하는 최재해 감사원장[아침햇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