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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치형, 과학의 언저리] 선생과 학생은 만나야 할까

등록 2020-03-12 18:09수정 2020-03-13 02:07

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여느 해 같으면 이미 봄학기 둘째 주가 끝났을 지금, 대학 캠퍼스는 한산하다. 적막이 흐른다고 할 정도다. 2주 미뤄진 개강일이 다가오고는 있지만 학교에 설렘이나 분주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다음주 월요일 개강일에도, 또 그 후로 적어도 2주 동안은 강의실에 학생들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많은 대학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당분간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모든 만남이 유예된 대학의 3월은 낯설다.

그와 동시에 지금 대학들은 어느 해보다 바쁜 3월을 맞고 있기도 하다.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격적으로 옮겨야 하는, 즉 대학의 핵심 기능을 한꺼번에 디지털 공간으로 이동하는 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맡은 사람들은 온라인 수업을 위한 장비, 소프트웨어, 노하우를 서로 주고받고, 학생 대신 카메라 앞에서 2주치 강의를 미리 녹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교무처 등 수업 일정을 설계하고 지원하는 대학 내 조직들은 처음 겪는 대규모 온라인 수업이 문제없이 흘러가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정비하느라 비상이다. 이 모든 작업은 또한 대학 구성원들이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한지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온라인 수업을 급박하게 준비하다 보면 수업이라는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 새로이 부각된다. 가르치는 사람이 하는 말이 어떻게 배우는 사람에게 가서 닿도록 할 것인가. 이 단순한 임무가 온라인 수업에서는 복잡한 문제가 된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로 공기를 울리면 대체로 해결되던 일이 온라인에서는 케이블과 서버와 인터페이스를 몇 겹씩 거쳐야 겨우 가능하다. 온라인 수업이 한꺼번에 열리는 동안에는 대학 내 다른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할 만큼 엄청난 일이다. 여건이 나은 대학에서는 기자재를 구입해주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줄 조교를 배정해주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선생의 말이 학생에게 속 시원히 전달되지 못하는 문제가 빈번할 것이다. 더구나 비정규직 강사에게는 온라인 강의 준비 환경도 불안정할 것이다.

모든 학생이 온라인 수업에 불편 없이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이 수업 시스템에 안정적으로 접속할 수 있는 기기를 소유하거나 빌려 쓸 수 있어야 한다. 강의실에 앉아 손을 들고 말하면 되었던 토론 수업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하려면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 공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학교가 제공했던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인프라를 온라인 수업에서는 학생 개인이 알아서 확보해야 한다. 기존 대학의 건물과 강의실이 휠체어의 접근을 막는 경우가 많듯이, 온라인 강의실에 접근하는 일이 모두에게 쉽고 편한 것은 아닐 수 있다. 디지털 공간은 생각만큼 가볍고 매끄럽고 평등하지 않다.

지금의 비상 상황에서 앞서 말한 것들을 모두 다 챙겨가며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대규모 온라인 수업 실험의 일차적인 목적은 당연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대학 교육 공백의 최소화다. 어떻게든 학생들에게 계획된 교육과정에 어긋나지 않는 수업을 제공하고, 동시에 학생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내는 것만으로도 전면적 온라인 수업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늦은 봄학기가 끝나고 나면 그런 관점으로 이 실험의 성공 또는 실패를 평가하는 보고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러나 대학은 단지 그 성공에 안도하거나 실패에 낙담할 것이 아니라, 과연 어떤 결과를 이 실험의 성공 또는 실패로 규정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아내면서 기존 수업과 비슷한 양의 정보를 전달하고, 비슷한 시험 성적을 얻게 하고, 심지어 비슷한 ‘만족도’를 보였다는 것만으로 이번 실험의 평가를 끝낼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면서 무엇을 포기하고, 유지하고, 추가해야 했는지 검토하는 중에 우리는 현재 대학이 수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또 수업을 통해 학생이 무엇을 경험하도록 하려는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선생과 학생의 만남이 불가능한 수업을 통해 역설적으로 대학은 선생과 학생이 만나는 자리로서 자신의 오랜 존재 의의를 다시 증명할 수도 있다. 또는 그 역할이 이제 유효하지 않음을 알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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