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코로나와 인권의 정치 / 홍성수

등록 2020-03-19 18:24수정 2020-03-20 13:40

홍성수 ㅣ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응과 관련하여 “인간 존엄과 인권이 가장 앞에 그리고 그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한마디를 곱씹어보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복잡한 이면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권리는 단연 ‘건강권’이다. 국제인권논의에서 건강권은 안전한 식음료, 위생, 영양, 주거, 노동조건, 환경, 건강에 관한 교육과 정보,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의 내용을 담은 포괄적 권리로 이해되지만, 건강권의 원형은 무엇보다 질병의 예방·치료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받을 권리이다. 그런데 한발 더 들어가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코로나 방역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어느 나라나 의료자원은 무한정이 아니다. 감염자마다 위중한 정도는 천차만별이고, 국가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역시 다양한 수위의 선택지가 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지만, 다른 질병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얼마큼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한창이다.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동참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거의 모든 종류의 자영업이 큰 타격을 입었고, 제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손실이 계속되면 임직원 모두에게 파급력이 미칠 것이다. 건강권을 위한 정책이 또 다른 중요한 권리인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은 그 덕분에 감염될 가능성도 적고 조금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뿐이다. 자기 격리도 어떤 사람에게는 약간의 불편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나 실직으로 귀결되고 만다.

감염된 사람들의 인권도 문제다. 확진자들은 자신의 동선이 낱낱이 공개되고 “마구 돌아다녔다”며 비난받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질병을 이겨내기에도 벅찬 사람들이 불필요한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이다. 회사나 학교에서는 감염자들이 낙인찍히거나 괴롭힘당할 우려가 있다. 괴롭힘의 피해자들은 노동권과 교육권을 심각하게 침해받게 된다.

어떤 집단은 감염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뒤집어쓴다. 그동안 중국인, 아시아인이 표적이 되어 왔는데, 어느 순간 미국과 유럽이 문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럼 이제부터 미국인과 유럽인이 혐오의 대상으로 될 차례란 말인가? 공익에 필요한 한도 내에서 날카롭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뭉뚱그려 어떤 집단에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는 사회적 편견과 혐오, 차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 자체로도 부당하지만 방역에도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애인 시설, 요양기관, 콜센터 등 인권의 사각지대는 가장 먼저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다. 야속하게도 바이러스는 사회의 취약한 지점들을 귀신같이 찾아 공략한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일해야 했던 노동자들, 열악한 시설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쯤 되면 감염의 역학적 경로보다 ‘사회적’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적실할지도 모른다.

근대 이후 인권이 정교하게 법제화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촘촘하게 자신의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권은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는 힘은 법이나 제도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미증유의 사태와 관련해서 법과 제도에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있던 해법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이 새롭게 해법을 찾고 정치가 이를 담론화시켜 시민들과 논의하고 해결방향을 정해야 한다. 여러 인권의 가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이 가치들을 어떻게 최대한 조화롭게 보호할 것인지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인권이 다시 정치의 무대에 등장했고,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다시 ‘정치’의 손에 달리게 된 셈이다. 그런데 ‘선거’가 코앞인 지금 이러한 긍정적 의미의 정치는 온데간데없고 이합집산과 정략적 이해타산만 난무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정치가 필요한 시기인데 말이다. 지금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정치의 실종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1.

‘내가 쓰는 예산’만 민생이라는 여야…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12월3일 뉴스뷰리핑]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2.

시작도 못 한 혁명 [똑똑! 한국사회]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3.

비루한 한동훈의 소심한 줄타기 [뉴스룸에서]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4.

[사설] 특활비·예비비 공개·축소하고, 여야 예산안 합의하라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5.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왜냐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