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재난기본소득’보다 중요한 것 / 김수헌

등록 2020-03-22 18:17수정 2020-03-23 02:37

김수헌 ㅣ 경제팀장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전세계가 방역과 함께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한 경기 대응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한 번에 1%포인트라는 전례 없이 큰 폭의 정책금리 인하를 통해 ‘제로금리’로 직행했고, 세계 각국이 대규모 재정 확대 방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에 짙게 드리운 경기침체의 공포감은 걷히지 않고 있다. 경제 내부 문제로 생긴 통상의 위기와는 달리 해법이 단순하지 않다는 데 시장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감염병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선 경제를 죽이는 정책(방역)과 경제를 살리려는 정책(경기부양책)을 동시에 내놓는 딜레마적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바이러스를 잡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를 위해 이동을 제한하거나 영업을 중단하는 식으로 방역 수위를 높이면 그만큼 경제가 받는 타격은 더 커진다. 경제 살리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과거 금융위기 때와 달리, 이번 위기를 헤쳐나가기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법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전 국민 혹은 특정 소득 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대상자에게 일회성 현금이나 소비쿠폰을 지급하자는 ‘재난기본소득’이 경제 위기를 극복할 ‘단순 명쾌한’ 해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국면에서 존재감을 한껏 과시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에 이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서도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지급 추진을 적극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2차 추경을 통해 위기 대응용 재정 규모는 늘려야 하지만 재난기본소득이 경제를 살릴 만병통치약 또는 손쉬운 수단처럼 인식되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재난기본소득은 문제의 해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정책적 상상력’을 되레 제약할 우려가 있어서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은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덮친 게 아니다. 업종별로 혹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충격의 강도나 위기의 수용성은 다 다르다. 해법도 복잡하고 입체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 중요한 건 모두를 위한 일회성 돈 풀기가 아니라, 경제적 타격을 입은 이들이 버텨낼 수 있도록 충분한 규모로 충분한 시기에 걸쳐 현금을 지원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지원 대상 선별 노력과 현장 파악 능력이 중요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재정의 화력을 집중할 곳, 위기가 전이될 가능성이 큰 곳을 찾아내고 지원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여기에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전례 없는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다.

몇십만원 수준의 긴급 생계비가 필요한 이도 있지만,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에겐 당장 가게를 유지하고 공장을 돌리기 위해 수천만원의 경영안정자금이 급할 수 있다. 이들에겐 빠르고 손쉬운 대출이 우선이다. 정부가 지난주 금융 대책을 내놓았지만, 대출 문턱을 더 낮출 수 있을지 더 싼 금리나 무이자로 대출할 수는 없을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당연히 사후 대출 부실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둬야 한다. 사태가 길어지면 기업 도산이 이어지고 실업 문제나 금융권 리스크도 불거질 수 있다. 구조조정이나 산업생태계 유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고, 일자리 정책도 새로 짜야 한다. 단순히 재난기본소득으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당한 재정을 동원한 종합적인 정책 패키지가 필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재난기본소득이 소비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위기는 유효수요 부족이 아니라, 감염병으로 인한 경제활동 중단 탓에 빚어진 것이다. 경제가 정상으로 돌아가야 소비도 이뤄진다. 감염병 사태가 잦아진 뒤 소비 촉진이 필요한 시점에서도 단순히 소비쿠폰에 의존하기 보다는 ‘스마트’한 해법을 찾아봐야 한다. 내구재를 비롯한 제품 소비와는 달리 여행·회식·문화생활 같은 서비스 소비는 감염병 사태로 때를 놓치면 미뤄지지 않고 사라질 가능성이 큰 수요다. 서비스 수요가 최대한 덜 사라질 수 있도록 소비 촉진 인센티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서비스 소비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나 소비액의 일부를 환급해주는 방식 등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minerv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1.

[홍세화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2.

이대로 3년 더 갈 수 있다는 오만과 착각 [아침햇발]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3.

이승만·박정희를 국립묘지에서 파묘하라 [왜냐면]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4.

[사설] ‘채상병 사건’ 회수 몰랐다는 이종섭, 대통령실이 했나

[사설] 2천명서 한발 물러선 정부, 이제 본격 협의로 의-정 갈등 풀어야 5.

[사설] 2천명서 한발 물러선 정부, 이제 본격 협의로 의-정 갈등 풀어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