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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동춘 칼럼] 코로나19에게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등록 2020-03-31 18:35수정 2020-04-01 02:07

김동춘 ㅣ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어디서 먼저 시작되었는지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크게 떠든 지 30여년이 되었지만, 생명체에게 원래 지구는 하나였다. 그러니 국가, 국경이라는 인위적 장벽이란 참 우스운 것이다.

그런데 확진자나 사망자는 국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한 나라 안에서도 감염으로 죽을 확률은 매우 차별적이다. 세계는 하나이나, 감염으로 죽을 확률은 국가, 연령, 계급에 따라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경제력에 기초한 각국의 서열과 집단 방역능력상의 서열은 완전히 별개임이 드러났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방역능력에 관한 한 ‘후진국’ 이웃 쿠바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후진국이다. 가난한 쿠바의 의사들이 지금 부자 나라들의 재난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국가복지와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자랑하던 유럽 나라들도 방역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대혼란에 빠졌고,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단테가 말한 지옥편이 벌어진다.

코로나19가 창궐하니 보이지 않던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의료는 신성장 산업이다”라는 논리와 정책이 한국에서 착착 진행되었고, 그래서 대구는 ‘첨단의료’에 앞서가는 메디시티로 육성되었지만, 대구는 방역 사각지대임이 드러났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미국의 병원, 제약회사의 로비를 받은 정치가와 언론들이 보편적 의료보험 도입을 ‘사회주의’라고 공격하면서 무력화해 왔지만 이제 세계 문명의 중심, 뉴욕은 가장 위험한 곳이 되었다. 세계 최첨단 의료시설, 최고의 의학과 제약회사의 기술은 모두 폐렴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 뉴욕에는 인공호흡기도 두 사람이 함께 쓴다고 한다.

“미국에서 공공의료 그런 개념은 애초에 없었다.” 미국 전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가 미국의 폭증하는 감염자를 보고 한탄한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은 지난 20년 동안 공공 의료 지출을 지속적으로 축소해 왔고, 지금 이러한 대재난 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병상과 의사를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 없다. 하나의 유럽을 외친 지 20여년이 지났건만 모든 이웃은 이탈리아의 구조요청에 응답은커녕 국경을 폐쇄할 정도로 ‘유럽 공동체’는 공허하다.

지금 전세계 마스크의 반은 중국에서 생산되는데, 일찍이 이런 산업을 포기했던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금 2달러짜리 마스크를 20달러 줘도 살 수가 없게 되었다. 방호복과 가운조차 모자란다고 한국에 의료장비 지원을 요청했다 한다. 원래가 그랬지만 지금 돈은 생명을 구할 수 없다. 각종 첨단무기, 탄도미사일도 무용지물이다. 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앞에 삼성병원, 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등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세계화’, ‘시장화’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었다. 금융과 무역은 세계화되었지만, 식량과 물 등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과 관련된 것들, 그리고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은 전혀 세계화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정치 제도 법 교육 언론도 세계화될 수 없지만, 의료복지, 공공복지는 오롯이 국가와 사회의 몫이었다. ‘지구촌’은 철학자의 이상에 가깝고, 생명이 다급하면 모두가 국가와 사회에 매달린다. 외환위기 직후 국가는 시장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주류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이 외쳤으나, 바로 지금 그들이 지금 왜 정부가 마스크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느냐고 가장 이율배반적인 목소리를 낸다.

코로나19의 확산은 각국의 공공 인프라, 아니 국가의 존재의미를 가장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매우 정치적인 사건이다. 한국은 방역에 관한 한 최고 모범국가로 칭송되고 있어서 정말 자랑스럽고 다행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튼튼한 의료 공공성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우리는 걱정을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시작되는 경제 대란 앞에 한국의 실업, 빈곤 구호체계와 사회적 안전망이 매우 부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걱정은 더욱 커진다. 방역의 성과에 도취하지 말고 빨리 사회안전망 제고를 위한 제도 정비 작업에 나서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가자. 한국에서 코로나19를 잘 진압하면 이제 한국인들은 안심해도 좋을까? 공항과 항구를 완전히 폐쇄하고서 살 수 있나? 미국과 유럽 경제가 흔들리고, 현대자동차 등 전세계의 한국 회사가 문을 닫고 있어도 한국 경제와 취약계층의 한국인들이 버틸 수 있나?

자연계로서 지구는 하나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코로나를 잡지 않고서는 한국만 살아날 수는 없다. 인류의 연대와 삶의 방식 전환이 지금보다 시급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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