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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정부의 시간, 기업의 시간, 사회의 시간 / 최우성

등록 2020-04-01 18:38수정 2020-04-02 02:37

최우성 ㅣ 산업부장

코로나가 인공지능(AI)을 이겼다. ‘머지않아’ 자율주행 트럭이 미국 내 300만 트럭 운전사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따위의 이야기는 ‘눈앞에서’ 일주일 사이 수백만명을 실업자로 내모는 현실에 무릎을 꿇었다. 오늘의 바이러스는 내일의 인공지능보다 힘이 세다.

2008년 가을, 금융시장에서 지펴진 작은 불씨는 기업과 가계로 옮겨붙어 화마로 변했다. 발화 지점이었던 미국에선 그해 겨울 월평균 8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분기별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제출한 60개 나라 가운데 경기침체를 경험한 나라는 52개나 됐다.

하지만 코로나 경제위기의 파장은 12년 전 금융위기의 기억마저 가뿐히 지워버릴 기세다. 소비(수요)와 생산(공급) 양방향에서 가해진 압력이 한데 합쳐져 실물 영역을 덮쳤고, 한층 거센 태풍이 되어 금융시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아마도 다음 순서는 다시금 실물 영역을 집어삼키는 초강력 되먹임, 곧 복합 불황이리라. 금융위기의 전개 양상이 도미노 쓰러뜨리기에 가까웠다면, 이번 경우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결국엔 죄다 터지는 팝콘 튀기기와 닮은꼴이다.

우리 경제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생산과 소비는 곤두박질쳤고 고용 지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우리 기업들은 위기 한복판에 서 있다. 최전방 더듬이라 할 회사채 시장엔 불안감이 감돈다. 이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물량은 29년 만에 최대 규모다. 지난 26일 한국은행이 기업에 숨통을 틔워주려 3개월간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을 통한 유동성 지원에 나선 배경이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에서도 비슷한 기업 살리기 사례가 있다. 중앙은행이 특수목적회사(SPV)를 세운 뒤 기업어음매입기금(CPFF)을 만들어 돈줄이 마른 기업의 기업어음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 중앙은행한테 급전을 ‘대출’받은 목록엔 지엠(GM), 포드, 지이(GE), 할리데이비슨, 맥도날드 같은 이름도 들어 있다. 나라가 급전을 꿔준 덕에 기업은 살아남았고, 사람들은 명품 오토바이를 타거나 빅맥 햄버거를 먹는 자유를 지금도 누린다.

성급한 물음일지 모르나,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산업구조의 뼈대가 바뀔 수도, 생산과 유통, 조직관리 방식과 근무 형태가 바뀔 수도 있다. 살아남은 기업은 언제 도움을 받았냐는 듯 쾌속질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달라지지 않는 건, 바이러스는 인간을 위협할지언정 인간이 만들어낸 기존 사회제도의 견고한 틀은 허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건물을 무너뜨리고 재산권을 파괴하는 지진이나 전쟁, 혁명과 다르다. 바이러스가 사라져도 일자리 걱정을 하는 쪽과 해고 카드를 쥔 쪽의 처지는 불변이다.

나라마다 우선 기업부터 살려내자며 두 팔 걷어붙인 이때야말로 ‘새로운 규칙’을 고민해야 할 순간이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선 정부가 기업을 최대한 돕는 게 옳다. 돈을 풀어 채권을 사고 대출 보증도 서는 게 맞다. 단 엄격한 ‘조건’이 따라야 한다. 훗날 기업을 살려낸 사회의 엄연한 공로, ‘위기 극복 배당’을 고루 누리기 위해서다. 고용 유지를 강제하고 배당이나 경영진 보수에 한도를 둬야 하며 자사주 매입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한국 사회야말로 국제통화기금의 냉혹한 조건에 당한 역사가 있지 않나.

기업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경영 위기 속에 비용을 줄이고 직원을 내보내는 건 분명 ‘합리적’ 행위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합리적 행위가 반드시 사회적 공동선이 되지만은 않는다. 그 거리를 줄이는 일이 더더욱 절실한 때다. 위기를 기회 삼아 해묵은 숙원사업(?)을 해치우려는 기업의 일탈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코로나19를 이겨낼 거다. 남은 과제는 바이러스의 대공습을 우리 경제의 면역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는 일이다. ‘정부의 시간’이란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신성함을 찬양하던 세상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습격에 넋을 잃고 정부의 손이 거인의 손이 되기만을 기다린다. 부디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판에 박힌 갑론을박일랑 잠시 제쳐두고, 새로운 규칙부터 단단히 세우고 볼 일이다. 정부의 시간이 ‘기업의 시간’으로 바꿔치기되는 건 불행이다. 지금은 ‘사회의 시간’이다.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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