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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아이는 차를 죽이지 못한다 / 이명석

등록 2020-04-03 17:57수정 2020-04-04 02:33

요즘 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고 다닌다. 오늘도 열명이 넘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와 소년, 건들거리며 장난치는 중학생 무리, 우람한 덩치의 헬스장 청년들…. 공통점은 단 하나, 모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꼬리를 물고 질주하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스쿠터를 운전하다 정지선에 섰다. 보행자들은 일단 놀랐다. 그러곤 황급히 길을 건넜다. 나는 핸들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가세요. 열에 여덟은 눈으로 고맙다고 했다. 서넛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이상하다. 이게 왜 고맙지?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는데, 차들은 어째서 멈추지 않을까? 보행자는 왜 차들의 행렬이 잠시 끊어진 틈을 찾아내, 번개처럼 뛰어 건너야 하나? 이유는 단 하나다. 차는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사람은 차를 죽이지 못한다. 언젠가 프랑스 잡지에서 장자크 상페가 그린 만화를 보았다.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건너는데,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일 생각을 않고 돌진해 온다. 길을 건너던 할머니는 양산 끝을 펜싱 칼처럼 들고 오토바이를 겨눈다. 보행자들, 특히 발이 느린 사람들은 길을 건널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스쿨존과 관련된 법률 개정으로 여러 말이 오간다. 아이들이 다니지 않는 야간에도 규제해야 하나? 운전자가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지나친 형량이 부과되는 게 아닌가? 이런 반론에도 귀 기울여 보았다. 그러다 누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놓은 블랙박스 영상을 보았다. 학교 앞 좁은 길에서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던 승용차가 갑자기 튀어나온 아이를 칠 뻔한 영상이었다. 영상을 올린 요지는 이렇다. 이럴 때도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하나? 나는 갸우뚱했다. 저런 상황이야말로 엄격하게 안전운전을 강제해야 할 이유가 아닌가?

우리는 운전자이기 전에 모두 보행자다. 그리고 매일 ‘도로’라는 이름을 가진 죽음의 강을 피해 다녀야 하는 불행한 신세다. 집 밖 골목에서부터 안심은 금물. 배달 오토바이와 후진 주차가 우리를 노린다. 큰길로 나가면 사방은 새까만 아스팔트, 자동차들의 독점 구역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보도는 아주 좁다. 게다가 불법주차된 자동차에 점령당해 있다. 횡단보도는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이지만, 그것조차 파란 불이 켜진 아주 짧은 순간만 허용된다. 어른들에게도 아슬아슬한 그 규칙을 아이들에게 강제해야 한다.

내가 아이라면 이런 주장을 하겠다. “스쿨존이 위험한 건 자동차와 아이들이 만나기 때문이죠. 그러니 그 지역을 보행전용구역으로 만듭시다. 그러면 부주의한 아이를 치었다고 억울해하는 운전자는 없을 겁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먹힐 리 없다. 법은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어른들이 만든다. 그들은 운전대를 잡으면 이상한 존재가 된다. 신호등을 한번이라도 놓치면, 과속방지턱에서 속도를 늦추면, 횡단보도에서 우선 멈춤 하면, 게임에서 영원히 낙오할 것처럼 달린다. 그들이 법을 조금이라도 바꾼 이유는 뭘까? 급정거를 하고 운전석에서 내려와 쓰러진 아이를 봤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였다. 자전거를 타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아이를 보고 브레이크를 꽉 잡았다. 아이는 털썩 쓰러졌다. “야! 너 죽으려고?”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아이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내 눈치를 봤다. “괜찮아?” 목소리를 누그러뜨렸지만, 아이는 달아나듯 뛰어갔다. 밤새 걱정했다. 아이가 다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거였다. 나는 이 비겁한 마음을 안다. 아직 잊히지 않는 그 아이의 얼굴이 말한다. 나는 자전거를 죽이지 못해요. 하물며 자동차는.

이명석 ㅣ 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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