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지로 ㅣ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가 세계적으로 팔리고 있다. 이 소설은 갑작스러운 페스트 유행으로 봉쇄된 도시 안에 있는 의사와 공무원의 필사적 싸움을 그린 이야기다. 주인공인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일(페스트의 유행)은 영웅주의 따위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건 성실성의 문제거든요. 이런 생각을 혹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입니다. 내 경우에는 곧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전염병 대책으로 시민에게 집회나 행사를 개최하지 말고 외출 제한 조처에 협력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위정자가 성실하고 공평하게 직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시민들이 느낀다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규칙을 지키며 전염병으로부터 사회를 지키려 할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성실한 위정자를 선택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위정자에게 성실함을 요구할 수 있는 원천은 사람들의 사회에 대한 귀속의식과 사회에 공헌하려는 의욕이다.
위기 대응 와중에는 아무래도 행정부에 권력이 강하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바이러스 대책은 항상 전쟁에 비유된다.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지도자에게 권력을 집중시켜서 과감히 의사결정을 하고 신속히 대책을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보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한 오늘날 스마트폰과 빅데이터를 사용하면 개인의 행동을 추적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도자에게 위기는 권력을 확장하고 지속하기 위한 최적의 기회다.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예를 들 것까지도 없이, 위기는 위정자에게 권력에 대한 비판은 틀어막고 국민을 순종시키는 마약과도 같다. 정부가 폭주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 참여 의식이 중요하다. 비록 신속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기록을 보존하고 정보를 공개하고 의회에서 설명하고 비판을 하고 다른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자유는 항상 확보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월에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져 여야가 자유롭게 논쟁을 벌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의회와 선거에서 하는 논쟁이야말로 정보공개를 확보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다. 위기의 와중에도 국민이 사고 정지에 빠지지 않고 야당이 정부 비판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건전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2020년 여름에 도쿄올림픽이 열릴 예정이었던 것이 정부의 위기 대응을 왜곡했다. 올림픽은 총리와 도쿄도지사가 크게 자신을 홍보할 기회이기 때문에, 이들은 올림픽 개최 때까지는 권좌에 앉아 있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된다. 그 자체를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정치인으로서 올림픽에서 주목받는 것과 전염병 만연이라는 위기를 수습하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지난달 24일 아베 신조 총리는 도쿄올림픽을 1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너무 늦은 결단이었다. 도쿄올림픽 연기가 발표된 직후부터, 일본 국내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도쿄올림픽을 예정대로 개최할 생각으로 일본이 안전하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가 감염자 수를 속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 개최에 매달리고 있던 올해 1월부터 3월 초까지 중국과 한국에서의 감염 확산 사례를 보면서도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대책을 충분히 세우지 않았다는 점은 명백하다. 도쿄 등 대도시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데도 의료 기반과 물자는 부족하다.
아베 총리는 4월1일 국회 답변에서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 대해서 “인류가 바이러스와 싸워 이긴 증거로서의 대회가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극히 중요한 대회다”라고 말했다. 이 과녁을 빗나간 낙관론에는 기가 막힐 뿐이다. 바이러스 위협에 전율하면서 대책을 필사적으로 세우는 게 정치인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