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홍 ㅣ 녹색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이 공분을 사고 있다. 알려진 가혹 행위들은 언론을 통해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정도여서 거의 집단 트라우마에 가까운 광범위한 충격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린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에 몇만 단위 규모의 공범들이 게임을 하듯 동참했다는 점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여성을 위협하는 성범죄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했던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 하지 말아달라’는 식의 딴청 피우는 반응도 이번 사건 앞에서는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작 범인들은 처벌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텔레그램 메신저의 익명성을 믿은 것이 절반이라면 들통나도 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믿음이 절반이었다. 유사한 범죄 행위에 대한 그간의 처벌 사례들을 보면 별로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거꾸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탈취된 신상정보와 결합한 성착취 영상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도 피해자들을 위협할 수 있는 흉기가 되었다. 가해자들이 자신과 주변인들의 신상정보를 모두 꿰뚫고 있는 상황에서 신고를 해도 처벌이 불확실하다면 피해자들은 그 협박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납치되지 않은 채 납치되고 감금되지 않은 채 감금되어버렸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으로 듣게 되는 호소가 있다면 범인이 응당 처벌받을 것이라는 신뢰감이 없다는 점이다. 이는 트라우마에 따른 심리내적인 반응이 아니라 한국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매우 현실적인 염려이다. 피해자들은 흔히 신고를 주저하거나, 신고했더라도 재판 기간 내내 그 결과를 불안해한다. 상담을 하는 입장에서도 재판 결과가 결국 미흡하게 나올 수 있다는 무언의 전제 아래 면담을 진행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에도 내담자를 지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흔히 자신을 침해한 폭력의 책임이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무의식적인 죄책감과 수치심에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 범죄가 결국 없는 일이었다고 힘겨운 재판 끝에 결론지어지면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분노를 마침내 과거의 것으로 흘려버리는 대신 스스로를 원망하며 우울해지는 길로 들어가려 하게 된다.
극심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해도 극복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실제로 많은 내담자들에게서 경이로운 인내와 용기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폭력이 중단되지 않은 채 그것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있는 사람이 심리적 회복을 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도 여성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다양한 종류의 침해 행위들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제도가 그것을 멈춰주는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그것을 조심하라고 한다. 당연한 권리로서 주어져야 할 일상의 안정감이 스스로 지켜야 할 책임이 되어버린다.
디지털 성범죄는 음란성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와 폭력의 문제임을 아무리 호소해도 사법부는 이를 ‘불법음란물’ 취급 사건 정도로 간주해서인지 솜방망이 처벌을 반복해왔다. 이른바 ‘웹하드 카르텔’ 등에 대한 공론화 이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체계가 조금씩 강화되고 있으나 범죄 행위 자체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개인의 신상정보를 이용해 일상을 침범하고 위협하는 스토킹 범죄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관련 법 자체를 만들지 않고 있다. 텔레그램 집단 성착취 사건은 이렇게 방조되고 있던 개별 범죄 행위들이 익명성 집단 안에서 공유되고 융합하여 집대성된 결과였다. 평범한 일상을 지켜줄 최소한의 선조차 그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까지 고통받고 있다면 이는 총선보다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