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개설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공유 대화방 등에 단순 참여만 했다면 성착취물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성착취물을 구입했어도 다운로드를 받지 않은 상태라면 소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미 스트리밍 또는 클라우드를 통한 파일 유통이 일반화된 가운데 법원이 구시대적 잣대로 법조문을 해석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월에도 대법원은 미성년자 성착취물 1125건을 다운받을 수 있는 클라우드 주소를 전달받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소지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26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소지) 등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징역 5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 춘천재판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ㄱ씨는 온라인 대화방 또는 채널을 개설해 운영하고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배포한 혐의, 채널에 접속할 수 있는 링크를 대화방에 게시한 혐의를 받았다. ㄱ씨는 또 다른 사람이 개설한 성착취물 공유 대화방·채널 7개에 접속해 참여 상태를 유지했는데, 검찰은 이를 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ㄱ씨의 혐의 전부를 유죄로 인정해 1심은 징역 6년, 2심은 징역 5년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ㄱ씨의 여러 혐의 중 다른 사람이 개설한 채널 등에 단순 참여만 한 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ㄱ씨 공소사실에 포함된 수많은 성착취물 가운데 일부는 ‘지배상태’에 있지 않아서 ‘소지’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성착취물 소지’란 성착취물을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두고 지배관계를 지속시키는 행위를 말한다”며 “성착취물 파일을 구입해 (다운로드 하지 않고) 시청할 수 있는 상태(에 머물거나) 또는 접근할 수 있는 상태만으로 곧바로 이를 소지로 보는 것은 문언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가입한 7개 채널 및 대화방은 성명불상자가 개설·운영했을 뿐 피고인이 지배하는 채널 및 대화방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성착취물이 게시된 7개 채널 및 대화방에 접속했지만, 그곳에 게시된 성착취물을 자신의 채널 등에 전달하거나 다운로드하는 등 실제로 지배할 수 있는 상태로 나아가지는 않았고 달리 그런 지배를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ㄱ씨의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원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ㄱ씨가 자신이 직접 개설한 채널에 성착취물을 게시한 행위에 대해 대법원은 “성착취물을 자기가 지배할 수 있는 상태에 두고 지배관계를 지속시키는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며 소지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성착취물의 ‘지배상태’ 여부를 다운로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대법원의 일관된 태도다. 앞서 지난 6월 대법원은 미성년자 성착취물 1125건을 다운받을 수 있는 클라우드 주소를 전달받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온라인 주소(URL)는 웹페이지 서버에 저장된 영상물의 위치 경로를 나타낸 것에 불과해 ‘소지’로 볼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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