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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의길 칼럼] 코로나19에 ‘국뽕 기자’가 된 사연

등록 2020-04-06 19:00수정 2020-04-07 02:40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에서 세계화 역류와 미-중 분업체제의 약화가 예상된다.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방역하고 있는 한국에는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조건들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기자를 ‘국뽕’이라 한다면, 그런 ‘국뽕’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정의길 ㅣ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대표적인 두 모델은 한국과 스웨덴이다. 두 나라 모두 강제적인 봉쇄와 격리 없이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을 영위하며 코로나19 확산에 대처하고 있다.

한국은 감염자를 철저히 조사해 추적하며 코로나19 확산을 막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고위험자만 관리하면서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이른바 ‘국민적 면역 생성’ 방식을 택한다. 코로나19 전파를 극히 완만하게 진행시키며 국민의 70%가량에게 면역력을 만들어 대처하려는 방식이다.

두 모델 모두 장단점이 있다. 한국처럼 감염자를 조사해 추적하는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자체를 퇴치하는 길은 아니기에, 언제라도 사태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 스웨덴 모델 역시 국민적 면역 생성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발생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두 나라가 이런 모델을 채택하는 것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이다. 스웨덴은 인구밀도가 낮은데다, 성인이 되면 대부분 독립해 1인가구 비율이 높고, 몰려다니는 문화가 없다. 반면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데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구 비율이 높고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문화이다.

경기도 고양시 안심카 선별진료소(드라이브스루 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자동차 창문을 통해 검진하고 있다. 고양시 제공
경기도 고양시 안심카 선별진료소(드라이브스루 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자동차 창문을 통해 검진하고 있다. 고양시 제공

한국이 감염자 조사와 추적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 것은 발달된 정보기술 및 체제, 잘 관리된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있기 때문이다. 또 프라이버시보다 감염자 조사와 추적에 기꺼이 동의하는 시민적 합의도 있다. 스웨덴은 한국식 모델을 하려고 해도 그럴 능력이나 사회적 문화가 안 되어 있다. 한국 역시 스웨덴 모델을 채택할 조건이 안 된다.

어떤 모델이 더 좋은 결과를 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스웨덴 모델이 장기적으로 맞다고 해도, 한국식 감염자 조사와 추적 등 방역 대책은 앞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한국식 모델이 현재로서는 위험성이 적고, 다른 나라들이 당장 따라 할 수밖에 없고 따라 하려고 한다.

한국이 코로나19 대처에서 무엇보다 평가받아야 할 측면은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방역 성공이다. 강제적인 봉쇄와 이동제한 없이, 비교적 정상적인 사회·경제 활동을 구가하면서 감염자 조사와 추적, 통제를 시민적 합의 속에서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다.

둘째, 코로나19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실물적 위기에 대처하는 한국의 사회·경제적 토대와 역량이 견고함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빠르게 개발된 효율적인 진단키트 등 첨단 제품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방역장비 역시 충분히 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첨단기술과 제조업 역량이 발군임을 보여준 것이다. 북한과의 긴장으로 사재기의 원조 나라 격이었던 한국이 이번에는 가장 사재기가 없는 나라로 떠올랐다. 중국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은 국제사회에 장기적으로 부정적이다. 중국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는 압도적인 봉쇄와 격리에 의거했다. 또 그 과정에서 중국에 편중된 제조업 역량이 중국과 다른 나라 모두에 재앙임을 보여줬다.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실물 위기 앞에서 제조업이 한 국가에 편중됨으로써 공급망 마비와 붕괴의 위험성이 높아졌고, 각국 모두는 필요한 물품과 장비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미국이 설계하고 중국이 제조하는 미-중 글로벌 분업체제는 코로나19 확산 앞에서 미국이 더이상 수용할 수 없는 체제임이 드러났다. 코로나19 이후 세계질서에서 세계화 역류와 미-중 분업체제의 약화가 예상된다. 세계화 역류가 어떤 양상을 보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각국의 사회·경제적 체제에서 자급적인 체제를 보정하는 한편 자본 권력보다는 각국의 주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국제질서에서 한국이 유리한 입지에 설 수 있는 조건들이다. 코로나19 확산 앞에서 한국은 사회·경제 체제를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한편 실물 위기에 대처하는 물적 토대를 보여줬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 권고대로 국경을 폐쇄하지도 않았고, 코로나19 방역에서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모범을 보였고, 손을 내미는 여유도 보였다.

지난 30년, 아니 지난 반세기 동안 미우나 고우나, 지지고 볶고 갈등하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역량을 키워온 덕분이다. 1970년대 오일 쇼크는 한국에 장기적으로 기회였다. 한국은 중동의 오일 달러를 흡수해, 선진국들이 떠나가는 제조업을 이어받아 키웠다. 코로나 쇼크 역시 한국에 또 한번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기자를 ‘국뽕’이라 한다면, 그런 ‘국뽕’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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