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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세계가 다시 만날 때 / 전정윤

등록 2020-04-15 16:37수정 2020-04-16 09:26

전정윤ㅣ국제부장

<한겨레21> 사회팀에서 일하다 국제부로 돌아왔다. 2년간 주로 한국 사회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말마 같은 생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나의 미력도 큰 도움이 되는 곳에서 만난 취재원과 독자를, 아니 사람과 사람을 기사로 ‘연결’하는 일에 이끌렸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 공감과 변화의 작은 겨자씨를 심는 일이 사회 기자로서 나의 보람이었다.

한국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 인종과 언어와 역사와 문화가 다른 지구촌의 누군가를 한국의 독자와 ‘연결’하는 것, 멀리 떨어진 국제사회의 어떤 현상을 한국 사회의 맥락 안으로 끌어들여 독자에게 소개하는 국제부 일도 매력적인 도전이다. 넓은 시야로 지구촌을 조망하고, 깊은 통찰로 세계사와 국제 관계를 꿰뚫는 역할을 부여받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인간적인 성숙의 일부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부에선 하늘까지 쌓인 외신기사와 발표자료 더미 위 ‘인공위성’에서 지구촌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좀체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현실의 고통과 기쁨에 울고 웃는 사람들을 같은 눈높이로 마주하던 사회부 때와 다르다. 현재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200만명이라는 숫자 사이에서 사람을 드러내는 일은, 한국 확진자 약 1만600명이라는 통계 너머에 있는 사람에 주목하는 일보다 난이도가 높다. 공감이어야 할 기사가 자칫 설명으로만 끝나기 쉽다.

오랜만에 돌아온 국제부에서 ‘어떤 국제뉴스여야 할까?’ 생각이 많고 살펴볼 게 많다. 10개 종합일간지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조선일보> 지면에서 ‘우한 코로나’라는 말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찾아보니 3월21일까지 집요하게 ‘우한 코로나’로 쓰다가, 적어도 종이신문에서는 3월23일치부터 슬쩍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고 적고 있었다. 지구촌이 발병 초기 우왕좌왕 ‘우한폐렴’으로 쓰다가 정신을 차리고 ‘코로나19’(Covid-19)로 고쳐 부른 지가 벌써 오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부터 감염병에 ‘특정 지역 낙인찍기’가 될 수 있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조선일보>가 ‘우한 코로나’를 고수한 건 언론이 정치적 의도로 특정 국가와 지역,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한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됐다. 나는 그것을 언론이 독자와 세계를 ‘잘못 잇는’ 행태로 기억한다. 비단 <조선일보>가 아니어도 그런 기사는 많다.

이름도 가려진 채 ‘우한 코로나19 첫 사망자’로 불리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중국이 발표한 ‘1월22일까지 총 사망자 17명 명단과 주요 병력 등 자료’ 속 그 사람은 쩡이라는 성을 가진 61살 남성이었다. 우한 사람 쩡은 2019년 12월20일 무렵부터 발열·기침·무기력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12월27일 우한 퉁한병원에 입원했으나, 2020년 1월9일 밤 11시13분 사망 선고를 받았다.

세계 78억명 인구 가운데 쩡의 죽음이 머지않아 ‘나의 죽음’으로 이어지리라 직감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구촌에서 벌써 12만명이 쩡과 같은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4일 현재 225명이 숨진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초기 대처 실패로 지구촌 코로나19 확산의 한 원인을 제공한 중국을 탓하긴 쉬워도, 서울에서 1400㎞ 떨어진 우한의 쩡과 나를 운명공동체로 인식하는 건 직관적이지 않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를 당연한 듯 말하지만, 남의 나라 아무개와 나의 실존을 잇는 ‘초연결 감수성’은 경험과 노력이 더 필요한 영역이다.

현대 문명이 아스테카와 잉카처럼 감염병 탓에 영원히 사라지는 일, 적어도 코로나19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테고, 그 전에 세계는 곧 서로를 경계하며 걸어 잠갔던 빗장을 풀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세계가 다시 만날 때, 단 한명이라도 더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경계가 아니라 ‘네가 괜찮아야 나도 괜찮다’는 예민한 연대의 감수성으로 세계를 대면할 수 있도록 잇는 것, 그것이 ‘편집국에서’ 내가 만들어가야 할 국제기사인 것 같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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