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최장수기업은 재계 15위 두산이다. 사람으로 치면 올해 124살이다. 국내 상장기업 평균수명(33년)의 4배에 달한다. 장수기업이 많은 일본은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3천개를 넘지만, 한국은 두산을 포함해 8곳에 불과하다.
두산의 창업자는 ‘보부상’ 박승직이다. 1896년 8월 서울 종로4가 배오개에 국내 최초의 근대적 포목점인 ‘박승직 상점’을 세웠다. 국내 최초 화장품인 ‘박가분’을 만든 ‘박승직 상점’은 1946년 두산상회로 상호를 바꿔, 그룹 이름의 기원이 됐다. 두산은 곡물 측정 단위인 두(斗)와 산을 의미하는 산(山)을 합친 말이다. “한말 한말 쌓아 큰 산을 이룬다”는 뜻이 담겼다.
두산의 역사는 명암이 교차해 왔다. 1993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때는 국민의 지탄이 쏟아지며 박용곤 회장(박승직의 장손자)이 물러났다. 2005년에는 총수형제 간 골육상쟁과 비자금사건이 터져 박용오·용성 전 회장 등이 유죄선고를 받았다.
반면 외환위기 직후 기업구조조정 성공사례로 화려한 조명을 받았다. 식품·음료·주류 등의 주력업종을 과감히 버리고, 중공업 중심의 새로운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환골탈태’의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 인수한 한국중공업(2001년·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2005년·두산인프라코어), 밥캣(2007년·두산밥캣)은 그룹의 주력이 됐다.
그로부터 20년. 두산중공업이 유동성 위기를 맞으면 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산업은행 등의 긴급 자금지원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올해 갚아야 할 빚이 4조원에 달해 추가지원이 절실하다. 채권단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포함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요구한다. 박정원 회장 등 두산 4세 경영인들의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부친세대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
<조선일보> 등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두중 부실의 주범으로 몰아간다. 하지만 명백한 ‘가짜뉴스’다. 두중의 실적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현 정부 이전인 2013~2014년이다. 주력인 석탄화력발전 사업의 위축, 두산건설에 대한 2조원 규모의 과도한 지원 등이 원인이다.
피해 규모가 크든 작든, 두중이 정부의 갑작스런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을 받은 것도 ‘팩트’다. 기업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더 큰 문제는 2천개에 달하는 중소 협력업체다. 원전 관련 노동자만 1만3천명이 넘는다. 방치하면 코로나로 인한 고용대란을 부추길 게 뻔하다. 탈원전 정책을 유지하면서도 원전업계의 타격을 최소화할 묘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단순한 자금지원 대신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총 사업비 8조원)을 재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업종전환 등을 위한 준비시간을 3년 정도 벌어줄 수 있다. 대신 노후원전을 조기 폐쇄해 탈원전은 차질없이 추진하면 된다.
곽정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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