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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코로나 이후의 자유주의 / 전범선

등록 2020-04-24 16:55수정 2020-04-25 02:33

전범선 l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코로나는 각국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시험이다. 성적표는 분명하다. 서양은 실패했고 동양은 선방했다. 미국이 꼴등이고 한국은 우등생이다. 어찌 된 걸까.

한국의 비결은 민주주의다. 세월호 사건은 위기관리 체제의 파탄을 증명했다. 성난 민중은 민주적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그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투명하고 민첩하게 위기에 대응했다. 박근혜 재임 당시 코로나가 터졌다면 어땠을까. 불통이 재난을 키웠을 것이다. 국민이 주권 행사를 통해 국가를 견제하여, 그 존재 이유인 생명 보호를 수행하도록 했다. 민주주의는 국가로 하여금 국민 말을 듣게 한다.

그런데 서양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원조 아닌가. 그들이 패배한 원인은 무엇일까. 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모순도 있지만, 그보다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의 영향이 크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집단면역을 들먹이던 때부터 알아봤다. 코로나 환자가 있는 병원에 가서 “모두와 악수를 했다”며 자랑하던 존슨은 몇 주 뒤 확진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 들어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악수를 하거나 마스크를 쓰거나의 문제는 “각자에게 달렸다”는 식의 방임적 태도가 화근이었다.

트럼프는 더하다. 민주당 주지사들이 펼치는 봉쇄 정책을 비꼬며 지지자들에게 “미시간을 해방하라! 미네소타를 해방하라! 버지니아를 해방하라!” 선동했다. 실제로 시민들은 총기로 무장하고 광장에 나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공산주의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따위의 구호를 외쳤다. 독립운동가 패트릭 헨리의 혁명적 외침이 250년 뒤, 타인의 목숨을 담보로 나의 자유를 누리겠다는 투정으로 둔갑했다. 미국은 확진자 80만명, 사망자 4만5천명이 넘었지만, 그래프가 꺾일 기미가 안 보인다.

자유주의의 본질은 말 안 듣는 국민을 국가가 내버려두는 것이다. 영국 귀족들이 왕의 말을 안 듣기로 한 것이 1688년 명예혁명이고, 그 나라 식민지 백성들이 본국의 말을 안 듣기로 한 것이 1776년 미국혁명이다. 영미권에는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이라는 믿음이 뿌리 깊다. 자유주의는 평시에는 인권 보장을 위해 유용하지만 전시에는 비효율적이다. 코로나 위기에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수 없다.

반면 한국인은 말을 잘 듣는다. 매주 정해진 날에 긴 줄을 서서, 마스크를 사고, 부지런히 쓰고 다닌다. 확진자라는 이유만으로 일거수일투족이 알려져도 불평하지 않는다. 사생활 공개로 인한 권리 침해보다 공중 보건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봉쇄 정책이 싫다고 총을 들고 나다니는 마당에 한국에서는 자가격리자가 답답해서 잠깐 나왔다가 체포된다. 국가가 전 국민의 생체정보를 감시하고, 동선을 통제하며, 자의적으로 공개한다. 자유주의적 원칙을 유보한 것이다.

백년 전 대공황 때도 자유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다. 재난 상황에는 국가의 행정력과 통제력이 중요해지고, 개인의 자유는 뒷전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자유의 보류가 익숙해지는 경험이 축적되면 위험하다. 코로나는 대공황보다 이미 심각하다. 장기화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자유주의를 생각하며 국가에 대한 경계의 끈을 놓치면 안 된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모순을 명심하자. 전자는 국가가 국민의 말을 듣는 것이고 후자는 국민이 국가의 말을 안 듣는 것이다. 둘은 엄연히 다르고 충돌한다. 자유민주주의란 둘의 균형을 잡는 과정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공히 민주주의 모범국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주의적 문화를 가져본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정부의 선진적인 방역정책에 협조하되, 코로나 이후 되찾을 자유, 쟁취할 자유를 끝없이 갈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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