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진 ㅣ 소설가
며칠 전 한국 정부가 외국에 입양된 한인들에게 마스크를 제공한다는 뉴스를 보고 여러 감정이 일렁였다. 마스크 대란을 겪고 있다는 국외 소식을 들으면서도 입양인에게까지 걱정이 뻗어가지 못했는데, 그 뉴스를 보고 나서야 걱정의 빈틈이 부끄러운 동시에 그런 섬세한 정책이 반갑고 고마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입양의 어두운 역사를 알지 못한 채 입양인을 단순한 연민이나 인도적인 시혜의 대상으로만 축소하려는 흐름이 형성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뒤 두 번이나 파양된 것도 모자라 시민권을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한국으로 추방된 아담 크랩서(한국 이름 신성혁)씨의 사연은 얼마나 알려졌는가. 비슷한 개인사를 갖고 있던 필립 클레이(김상필)씨는 결국 2017년 일산의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그들이 미국에서 시민권을 받지 못한 데엔 개인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시민권을 전제하지도 않고 입양을 가능하게 한 한국의 허술한 입양제도에서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국의 입양기관은 또 어떠했던가. 한국에서 입양기관은 미혼모 시설에서 태어난 아이는 출생신고를 생략한 채, 미아로 발견된 아이는 친부모를 찾아주려는 시도조차 없이 따로 고아 호적을 만들어 서둘러 외국으로 입양 보낸 전력이 있다. 심지어 어엿하게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고아로 둔갑되어 세계 각국으로 보내지곤 했는데, 미국으로 입양되어 작가로 성장한 카밀라 포트만(정희재)이라는 인물의 뿌리 찾기를 그린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이 관행을 ‘입양 세탁’이라고 표현했다. 옷이나 돈이 아닌 ‘입양’과 결합된 ‘세탁’이라는 단어를 읽는 순간, 돌연 내 주변의 온도가 차가워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은 2013년 전까지 대리입양이 가능한 나라이기도 했다. 대리입양이란 양부모 대신 입양기관이 양자를 선택하여 비행기에 태워 보낼 수 있었던 제도로, 아동 밀매로 악명 높았던 루마니아와 과테말라도 이 비인간적인 제도를 택한 적이 없다. 한 아이의 미래에 아무런 관심과 애정이 없던 이런 관행과 제도를 등에 업고 한국은 아이들을 더 많이, 더 편리하게 팔 수 있었고(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국외 입양 아동은 50만명 정도이고, 그중 한국 출신은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측된다), 성인이 되어 가족을 찾으려는 입양인들은 종종 서류상의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영원히 가족을 찾지 못했다.
입양 경험을 시적인 문장에 담은 <피의 언어>와 <덧없는 환영들>로 알려진 제인 정 트렌카(정경아)는 2019년에 출간된 <아이들 파는 나라>(전홍기혜, 이경은, 제인 정 트렌카 공저)에서 자신처럼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왔다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택한 입양아 출신 폴에 대해 썼다. 양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했고 친생 가족과도 재회했으며 수학 교사라는 좋은 직업도 가졌던 40대의 매력적인 폴은 태어난 고향에서 죽음마저 완성한 셈이다. 나는 폴을 본 적 없고 그와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만 제인의 증언을 통해 ‘인삼차 한 상자’와 함께 미국 농촌 가정에 보내졌던 어린 폴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상상할 기회를 얻었고, 그 얼굴을 떠올리며 나이 들 수 있게 되었다.
가정의 달이다. 가정이라는 기본적인 공동체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20만명의 입양인들은 저마다 어떤 삶을 살았고, 살고 있을까. 그들의 원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바란다. 사람들이 한국에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아동 수출’의 역사를 잊지 않기를. 어린 나이부터 단절과 혼란을 경험한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연민도 시혜의 자세도 없이, 그저 연대와 우정의 마음으로 더 애쓰며 들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