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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훈 기고] 무서운 역병의 계절을 나며 희망의 싹을 보았다

등록 2020-05-04 05:00수정 2020-05-05 14:40

[김훈 특별기고]
산업현장에서는 날마다 해마다
묻히고 타고 숨 막혀서 죽고 또 죽는다
이 참사를 원청 하청 재하청과
정규직 비정규직 일용직의 문제로 인식
개별 죽음의 구체성을 외면했다
일회용 진단키트의 정신은
재난에 대처하는, 국민을 대하는
매우 단순한 방향성을 시사한다
사람을 살려라!
그림/전민교 작가 wjsalsry1@gmail.com
그림/전민교 작가 wjsalsry1@gmail.com

4월 초부터 코로나19의 세력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점차 수그러지는 추세는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꽃과 신록의 유혹은 날로 짙어지고 겨우내 눌려 지내던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들썩이고 있으니,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정 본부장의 걱정을 마음에 새기면서, 나는 이 무서운 역병의 계절을 통과하면서 내가 확인한 희망의 싹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초기 방역망이 뚫린 직후부터 감염세는 동시다발로 폭발했다. 마스크 보급관리의 혼란으로 사회적 불안은 확산되었고 4·15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이 거대한 불안은 정치적 당파성으로 술렁거렸다. 그때, 뚫리면서 막아내고, 막아내면 다시 뚫리는 방역의 전선은 위태로워 보였다.

정부는 국민 각 개인의 개별적 생명의 구체성을 개별적으로, 그리고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 혼란에 대처했다. 수많은 일회용 진단키트를 만들어서 수많은 개인들을 개별적으로 검진했고, 유증상자들의 동선을 추적해서 거기에 걸려드는 수많은 개인들을 다시 검진하고 격리했다. 수년 전 메르스나 사스가 창궐할 때도 감염선을 차단하는 방역사업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정부의 행정력과 방역력을 총동원해서 의심이 가는 권역의 모든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상대하는 전면전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적과 싸우는 각개격파 전투처럼 보였다. 이 대응 방식은 국가와 사람의 관계가 국민이나 계층, 이념성향 같은 군집명사의 흐리멍덩한 안개에서 벗어나 정부 대 개인이라는 선명한 관계로 전환되는 장관을 보여주었다. 정부의 기능은 본래 그러해야 마땅한 것이고, 나의 감격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치세에 엎드려 살면서 국가 권력이 국민을 학대하는 꼴을 보아온 가엾은 백성의 슬픔이 섞여 있다 할지라도, 이 작은 희망의 싹이 나에게는 소중하다.

나는 헌법을 읽을 때마다 ‘국민’이라는 개념에 혼란을 느낀다.

헌법 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36조: 모든 국민은 보건에 관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그림/전민교 작가 wjsalsry1@gmail.com
그림/전민교 작가 wjsalsry1@gmail.com

헌법 1조의 국민은 ‘The People’(피플)이라는 군집명사일 테지만, 헌법 36조의 국민은 군집명사가 아니라 ‘모든 한 사람 한 사람’(every private person)이라야 마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국민은 이 사람도 아니고 저 사람도 아닌 무인칭의 다중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이란 그 개별성이 각각 존엄하다는 뜻이다.

제도의 틀을 설계하는 일과 제도를 작동시키는 일은 크게 다르다. 법과 제도가 지향하는 보편적 원리와 가치가 개별적 인간의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설계자들의 토털 픽처(Total picture)가 삶의 개별적 구체성의 실현을 향해 작동되지 않고, 이념의 깃발을 펄럭이는 공허한 정치 슬로건으로 전락하는 꼴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개별적 생명의 구체성을 군집 속으로 매몰시키는 방식으로는 권력을 강화할 수 있겠지만 일상을 개선할 수는 없다. 국가 대 개인의 긴장관계는 정치와 사회를 건강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일회용 진단키트는 그 개별성과 구체성의 대규모적 실현이다.

나는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회용 진단키트의 정신과 방식이 모든 산업 재해 현장이나 노동, 환경, 교통, 식품과 관련된 일상적 재난의 현장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이번처럼, 날마다 해마다 계속하면 재난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재난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는 가지게 되었다.

산업 현장에서 해마다 노동자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팔다리를 잃는다. 날마다 해마다, 떨어지고 끼이고 부딪히고 눌리고 깔리고 묻히고 터지고 타고 숨 막혀서 죽고 또 죽는다. 다들 알고 있지만, 날마다 이러하니 사람들의 감수성은 마비되어서 보아도 안 본 것 같고 죽음은 다만 통계숫자일 뿐이다. 역대 정부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서 석탄가루에 범벅이 되고 골수가 터져서 땅바닥에 흩어지는 이 무참한 죽음들의 개별적 구체성을 외면했다. 여러 정부들은 이 참사를 원청, 하청, 재하청과 정규직,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구획되는 군집들 사이의 문제로 인식했다. 국가 대 개인의 긴장관계는 증발했고 이 죽음들은 먹이 피라미드의 최하층부 질서에 의해 처리되는 행정사항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두려운 것을 보고도 두려운 줄 모르게 되었다.

코로나19 진단키트는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여러 재난 참사와 산업 재해에 대처하는 일과,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에 의미 있는 방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 방향은 복잡하고 심오한 사회경제적 이론이나 혁명적 슬로건 속에 있지 않고, 매우 단순하고 기초적인 상식 속에 있다. 사람을 살려라!

38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10명이 다친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고 현장에 지난 2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가져온 국화꽃이 놓여 있다. 이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38명의 노동자가 숨지고 10명이 다친 경기도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사고 현장에 지난 2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가져온 국화꽃이 놓여 있다. 이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월 말에서 3월 하순에 이르는 기간은 위태로웠다. 날마다 400~500명의 신환이 발생했고 900명 이상인 날도 있었다. 정부의 시행착오가 거듭되었고, 병상은 모자랐고 의료진은 지치기 시작했다. 나는 티브이 화면을 보면서 조바심쳤다.

이 어려운 동안에, 정은경 본부장은 날마다 티브이에 나와서 그날의 ‘사실’을 국민에게 보고했다. 그이는 폭발하는 신환의 숫자와 방역 현실의 어려움과 뚫린 구멍들을 모두 다 말했다. 그이의 어법은 탈정치적이었고 표정은 담담했다. 그이는 ‘사실’을 말했고, 거기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하고 있는지를 말했다. 그이는 성과를 자랑하지 않았고 실패를 숨기지 않았고, 사람들이 지켜야 할 사항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거듭 말했다. 그이가 말하는 ‘사실’은 정부가 힘겹게 사태를 장악하고 있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이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늘어나는 신환의 숫자는 방역망이 확장되고 검진 수가 늘어나는 결과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 ‘사실’의 힘으로 술렁거리는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바이러스가 정치적 변종으로 진화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고, 가공할 재난 속에서도 한국 사회는 큰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국민들은 대체로 정부가 요구하는 생활의 불편을 받아들였고, 사재기 같은 이기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악덕업자 몇 명이 마스크를 빼돌려서 쟁여놓고 폭리를 도모하려다가 적발되기도 했지만 마스크가 모자라서 허탕 치고 돌아가는 약국 앞 줄서기 대열에서 사람들은 짜증을 내면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나는 이것이 ‘사실’의 힘이고, ‘사실 말하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서 힘을 내장하고 있지만, 그 힘은 ‘말하기’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만 현실 속에서 작동한다. 정은경 본부장은 참으로 의젓하고 묵직하게 제자리에 있음으로써 ‘사실’을 말하는 자의 탈정치적 표정에는 깊은 의미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인류의 미래가 어떠할는지에 관해서는 석학들도 말을 더듬거리고 있지만, 강대국 중심의 세계 무역 질서와 국제 분업의 구조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한국의 앞날에는 지금까지 겪어낸 것보다 훨씬 더 큰 장애와 시련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경제를 기어코 살려내려는 노력은 소중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는 좀 더 가난하고 불편한 미래를 받아들이고 정부와 국민이 거기에 대비해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 경제의 위축이나 노동 현장에서의 위험, 물가와 공공요금의 인상,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가 소득 서열의 하위층을 강타해서 삶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사태는 경험적으로 증명되어 있다. 고통 분담은 아름답고 고귀한 이상이지만, 한국 사회는 계층 간에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사회경제적 난국을 극복한 역사적 경험이 전혀 없거나 매우 빈약하다. 1997년의 외환 위기 때도 국가 재정을 투입해서 거대 기업, 거대 금융 자본을 살리고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때 사회안전망을 크게 확장했지만, 자식들은 날마다 학교에 가야 하고 밥은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이므로 밥벌이의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의 어려움을 국가의 공적 부조로 해결할 수는 없었고, 결국 고통은 아래쪽으로 전담되었다. 그것이 토털 개념으로서의 위기를 신속히 벗어나는 방식이기는 했지만, 빈부 양극화와 세습 빈곤은 토착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실시된 휴일인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양재천근린공원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가 실시된 휴일인 지난 4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양재천근린공원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좀 더 가난한 미래를 받아들인다고 할 때, 거기에 따르는 고통과 희생의 총량을 사회 계층 간에 배분하는 문제 안에는 커다란 갈등과 분열의 마그마가 잠복해 있고, 여기에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코로나 이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은 결정될 것이다. 강자의 자선심에 호소하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의 효과가 있고 각자 용이 되어서 개천을 탈출하라는 방식은 아무 효과 없다. 힘이 다해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소리 질러도 힘이 없어서 일어서지 못한다.

바이러스의 기세가 꺾이자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오랜만에 외출 나온 병사들이 봄옷을 차려입은 애인과 팔짱을 끼고 다닌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애인들이 마스크를 벗고 키스하고 신호가 바뀌자 다시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건너가는 걸 나는 보았다. 저녁이면 1만원짜리 곱창전골을 파는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서 웃고 떠든다. 공원에 나온 노인들이 양지쪽에서 장기를 두고 킥보드를 타는 소년들은 물고기처럼 몸통을 좌우로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일상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일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이었던지를 일깨워준다.

사람들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의 밥벌이가 흐름으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코로나19는 거대한 규모로 증명해주었다. 코로나19는 인간 존재의 개별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일깨워주었고 자연을 헤집고 망가뜨려 가면서 삶에 대한 경건성을 잃어버린 현실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코로나 재난 속에서 돋아난 희망의 싹은 더 힘든 계절을 앞두고 있다. 싹이여,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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