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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자 / 정인환

등록 2020-05-07 18:23수정 2020-05-08 09:36

정인환 ㅣ 베이징 특파원

<논어> 위정편에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진정한 앎”이란 구절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상을 둘러싼 온갖 억측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글귀가 떠올랐다.

<데일리 엔케이(NK)>의 ‘심장 시술’ 보도에 이어 <시엔엔>(CNN)의 ‘위중설’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는 미국 정보 당국자의 한마디가 컸다. 가치 중립적인 그 한마디에 대한 해석과 그에 대한 추가 해석이 이어졌다. 결국 김 위원장은 “혼자서 걸을 수 없는 상태”까지 갔다가, 기어이 “99% 사망이 확실하다”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했다는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 침공을 주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도 ‘앎’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그는 2002년 2월12일 국방부 브리핑에서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점조차 모르고 있는 내용도 있다”고 했다.

미국은 침공 전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증거가 없었다.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에도 증거를 찾지 못했다. 미국은 수렁에 빠졌다. 2003년 3월20일 시작된 전쟁은 2011년 12월18일 미군이 공식 철군을 완료할 때까지 8년 8개월 28일 동안 지속됐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을 가장 반겼던 건 누굴까?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자, 북한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도 갈수록 떨어졌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집어삼키면서, 북한 관련 뉴스라곤 “코로나19 확진자가 0명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 있느냐”는 정도였다. 여론의 관심은 협상에 유리하다. 김 위원장은 신변 이상설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해마다 1월1일 내놓는 신년사가 올해는 없었다. 지난해 12월28~31일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에 관한 보도’가 이를 대신했다. <노동신문>의 당시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미국과의 장기적 대립을 예고하는 조성된 현 정세는 우리가 앞으로도 적대 세력들의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각 방면에서 내부적 힘을 보다 강화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기본 전선은 경제전선”이며 “농업전선은 정면돌파전의 주 타격 전방”이라고 규정했다. 1월6일 김 위원장이 올해 첫 현지지도 장소로 순천인비료공장 건설현장을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노동신문>은 2월18일치 1면에서 “농업건설의 병기창이 될 순천린비료공장”이란 표현을 썼다. 지난 1일 김 위원장이 ‘복귀 무대’로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을 고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지난해 12월3일과 8일 김 위원장은 삼지연군 읍지구와 양덕온천문화휴양지 준공식에 각각 참석했다. 준공식 장면을 전한 북쪽 사진 어디에도 행사의 일시와 장소가 적힌 펼침막은 보이지 않았다.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선 달랐다. 김 위원장이 앉은 ‘주석단’ 뒤에 걸린 대형 펼침막에 일시와 장소가 적혀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2020년 5월1일’이란 표현이다. 북에선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해(1912년)를 기점으로 한 ‘주체’를 연호로 쓴다. 서기가 등장할 때는 ‘주체 109(2020)년’이라고 병기하는 게 관례다. 이날 행사는 철저히 계산된 대외용이었을지도 모른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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