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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동학개미’의 변심? / 김수헌

등록 2020-05-10 19:12수정 2020-05-11 09:27

김수헌 ㅣ 경제팀장

코로나19 확산세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3월 국내 주식시장은 한달 새 무려 30% 넘게 떨어지는 역사적 폭락장을 연출했다. 한국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 기간 12조원이 넘는 매물 폭탄을 쏟아냈다. 공포 심리가 최고조로 치닫던 상황. 반전이 일어났다. ‘용감한’ 개인 투자자들이 앞다퉈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흔히 ‘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기록적인 매수 행진을 이어가며 외국인이 던진 매물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한국 증시는 일단 브이(V)자 반등에 성공했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가 올해 주식시장 유행어로 떠오른 배경이다.

개인과 외국인의 매수-매도 공방전을 126년 전 반외세·반봉건 기치 아래 봉기했던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이 표현은 3월 초 한 회계사가 진행하는 투자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졌다고 한다. 주식 투자를 동학운동에 비유하는 게 우스꽝스럽긴 하다. 하지만 이해할 만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주식시장에서 늘 외국인의 희생양이었던 개인이 이번 폭락장을 우량주 저가 매수 기회로 활용해 더는 ‘흑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정도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배당 주권’ 회복이라는 좀 거창한 의미 부여도 가능할 것 같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주식을 과점하면서 해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당금을 챙겨 가는 현실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다. 현재 외국인은 삼성전자 본주의 55.1%, 우선주의 88.5%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엔 이 비율이 각각 58%와 93%를 넘기도 했다. 이 정도 지분율이면 삼성전자에서 1년에 받는 배당금이 6조원에 육박한다. 실제 지난 3월 폭락장에서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은 이전에 주로 매매했던 코스닥 급등주 대신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대형 우량주를 집중 매수했다. 증시 전문가들 사이에선 꾸준히 성장할 기업에 장기 투자해 자본 차익과 배당 이익을 얻는 방식이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4월 들어 주가가 급등하자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한탕주의 ‘투기 본능’이 급속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동학개미’의 변심인지 새로운 ‘도박개미’의 출현인지 정확히 알 길은 없으나, 대규모 개인들이 코스닥 급등주로 관심을 돌리거나 주가지수·원유 등의 가격 상승과 하락에 베팅하는 고위험 파생상품에 몰려들었다. 지수 하락률의 2배 수익을 목표로 해 ‘곱버스’로 불리는 ‘코덱스(KODEX)200선물인버스2×’의 지난달 개인 순매수액은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급락하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유 가격 상승률의 2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레버리지 상장지수증권(ETN)에 뛰어들었다. 상품 내용도 모른 채 하루 수십%의 대박을 좇는 개인들이 몰리면서 레버리지 원유선물 이티엔은 실제 가치보다 10배나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상품은 실제 가치와 매매가격의 괴리율 폭등으로 거래 정지와 재개를 반복하고 있고, 베팅에 뛰어든 이들은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됐다. ‘빚투’(빚내서 투기)도 이런 고위험 파생상품에 집중되고 있다.

이번 폭락장이 누군가에게는 성공 투자의 출발점이 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쪽박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서 단기 대박의 환상은 실패의 지름길이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20년 보유한 어느 투자자의 계좌 인증샷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수익률 3141.67%. 평가액이 원금의 32배로 불었다. 많은 투자의 현인들이 강조하듯이 주식시장에서 결국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시간과 복리의 힘을 믿고 여유 자금으로 장기 성장할 기업의 주식을 꾸준히 사모아 오랫동안 보유하는 것이다. 성공 투자를 꿈꾸는 모든 ‘동학개미’들의 ‘건투’를 빈다.

minerv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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