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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팩트풀니스와 트루풀니스 / 전정윤

등록 2020-05-13 18:03수정 2020-05-14 13:59

전정윤 ㅣ 국제부장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2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지난해 화제였던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사실 충실성)에 제시된 질문 중, 이 글에 요긴한 두 문항을 추려보았다. 나는 보건 및 통계 분야 석학 한스 로슬링이 의도한 대로 두 문제를 모두 틀렸다. 전체 13개 문항 중에선 10개를 틀렸다. 저술 의도에 최적화된 ‘타깃 독자’였던 셈이다.

정답은 순서대로 B, C다. 나는 정답과 오답 사이를 어슬렁거리다 A, B를 선택했다. 로슬링이 각종 데이터를 동원해 설명하는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75%가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극빈층은 극적으로 줄었다. 인류는 큰 진전을 이뤘는데, 나는 세상이 더 나빠진다고 오해한 셈이다. 대부분이 나처럼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 속에 불필요한 공포를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 로슬링의 주장이다. 2017년 로슬링은 주요 14개국 1만2천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열세 문제를 다 맞힌 사람은 0명이었고, 15%는 빵점이었다. 위 두번째 문항의 경우 한국의 정답률은 4%였다.

국제부 기자임에도 “지구상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할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오해했다는 것, 내가 성찰해야 할 지점이었다. 더욱이 로슬링은 ‘극적인 이야기’(전쟁·난민·질병·테러 등)로 구성된―나도 많이 써온―기사가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주요 원인은 뇌의 본능이다.) 나의 ‘극적인 세계관’이 ‘극적인 기사’를 쓰게 하고, 한국의 ‘오답률 96%’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면, 어딘가 개운치 않지만 자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외신이 쏟아내는 코로나19 기사 중 <한겨레>가 보도할 내용을 ‘취사선택’하는 일, 최근 나의 주요 업무다. 눈길은 여전히 ‘극적인 이야기’로 향하지만 의지로 ‘팩트풀니스’에 주목한다. 특히 팩트풀니스에 근거해 작성된 각종 지구촌 통계를 주의 깊게 들여다본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요즘 극적인 이야기보다 훨씬 더 극적인 팩트풀니스를 직면하고 있다. 로슬링이 지적한 ‘우리가 저소득 국가의 삶이라고 오해’했던 것, 그 대척점에 있는 ‘우리가 고소득 국가의 삶이라고 오해’했던 또 다른 팩트풀니스가 도처에 널려 있다.

지구촌은 코로나19로 다섯달 만에 28만5천명(11일 기준)을 잃었다. 단일 국가로는 ‘G1’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8만여명)가 나왔다. 미국에서는 ‘록다운’이 시작된 3월 셋째 주 이후 7주간 3350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 경제활동인구 1억6천만명의 5분의 1이다. 미국에서는 800만가구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집세로 지출한다. 톰슨로이터재단은 코로나19 실업으로 150만가구(‘명’이 아니다)가 노숙자가 되리라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지반이 극적으로 흔들린 ‘고소득 국가의 삶’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6대륙 중 선진 유럽(15만6천여명)의 사망자가 가장 많다. 식량재단 자료를 보면, 록다운 이후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의 5분의 1이 자녀의 끼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선진 매뉴얼 사회’의 신화였던 일본이 총체적 방역 실패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감염 의심자가 병원 ‘110곳’으로부터 입원을 거절당했다는, 숫자인지 이야기인지 모를 비극은 저소득 국가에 대한 나의 오해보다 고소득 국가에 대한 오해가 더 깊었음을 강렬하게 자각시켰다.

“내가 질문한 모든 집단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 없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으로 여겼다”는 로슬링의 한탄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준다. 그러나 “코로나19 이전 모든 집단은 세상을 실제보다 더 안전하고, 더 평화롭고, 더 희망 있는 곳으로 한마디로 더 극적인 곳으로 여겼다”는 코로나19의 교훈 역시 절반의 팩트풀니스다. 이 양극단의 팩트풀니스 속에서 트루풀니스(진실 충실성)를 찾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코로나19 이후 세계의 과제가 아닐까.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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