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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국회의장 ‘흑역사’ / 신승근

등록 2020-05-20 18:05수정 2020-05-21 02:07

국회법 15조는 국회의장 선출을 ‘무기명 투표로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을 확정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선출 투표는 요식 절차일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에선 대통령이 사실상 지명했고, 최근에는 여당 내부의 교통정리를 거쳐 의장을 추대한다.

유신정권 시절인 제9대 국회에서 대통령 박정희는 초선 정일권을 국회의장으로 낙점했다. 10대 국회에선 자신이 임명한 유정회 의원 백두진을 국회의장에 앉혔다. 박정희는 의장에게 ‘직권상정 권한’을 부여하는 국회법 개정도 밀어붙였다. 겉모습은 의장 권한 강화였지만, 실질은 의장을 꼭두각시 삼아 국회를 쥐고 흔들려는 대통령의 꼼수였다. 실제 법안 날치기,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안’ 처리 등에 직권상정을 악용했고, 국회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국회의장을 내정하는 관행이 지속됐다. 2002년 ‘국회의장 당적 보유 금지 규정’(국회법 제20조)까지 만들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박희태 의장은 ‘직권상정’으로 4대강 관련법 등을 처리하며 대통령의 이해를 대변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에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하는 경우’(국회법 85조)로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하면서 의장은 행정부의 하수인 역할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실질적인 의원 자유투표로 의장을 선출한 사례도 김대중 정부 시절인 제16대 국회뿐이다. 2000년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이 된 한나라당은 의장은 야당 몫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자유민주연합과 연합해 이만섭 의원을 후보로 내세워 자유투표를 했고, 치열한 선거전 끝에 이 의원이 서청원 의원을 8표 차로 누르고 전반기 의장이 됐다. 하지만 2002년 16대 국회 후반기엔 박관용 의원이 제헌의회 이후 첫 야당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그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며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는 등 의장의 힘을 한껏 과시했지만, 17대 총선에서 야당과 함께 몰락했다.

4·15 총선에서 압승한 더불어민주당이 6선의 박병석 의원을 21대 국회 전반기 의장에 추대했다. ‘의장 흑역사’를 깊이 새기고, 올곧은 입법부 수장의 길을 걷기 바란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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