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수 ㅣ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핀란드 정부는 2017~2018년 동안 진행한 기본소득 실험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지난 6일 공개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인해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그 결과가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 사실은 기본소득이 고용률 제고에 있어 거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에 발표된 2017년의 실험 결과에서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과 기존 실업급여를 받은 집단 간에 근로시간의 차이는 사실상 없었다. 올해 공개된 2018년 결과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기본소득 수급자들의 근로 일수는 78일로, 실업급여 수급자의 73일보다 약 5일(8%) 정도 높았을 뿐이다.
학계에서는 세율이나 복지제도의 개편 등으로 실업자의 취업 뒤 실소득이 개편 전보다 10% 증가하면 노동시간은 대략 2~5% 늘어난다고 본다. 실험설계 당시 핀란드 정부는 월 76만원(약 560유로)의 실업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경우 실업자의 취업 뒤 추가소득은 100% 늘어난다고 계산하였다. 실업수당은 취업하면 사라지지만 기본소득은 계속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집단이 실업수당 집단보다 20~50% 더 일할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이보다 한참 낮은 8%였다. 이것이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의 고용 효과가 미미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다. 따라서 국내 일각에서 제기된 “기본소득이 노동 의욕을 더 고취시킨다”는 식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핀란드 정부가 2018년 1월 도입한 고용 활성화 정책이 기본소득의 고용 효과를 축소시켰다고 주장한다. 이 정책에 따라 실업수당 지급 규칙이 강화되면서 실업급여 수급자들의 고용일수가 늘어나 기본소득의 고용 증가 효과를 상대적으로 낮추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정책 도입 이후 구직활동자로 등록된 개인의 구직노력을 강제하기 위한 의무와 제재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수급자의 절반 정도도 정책의 도입 뒤 육아보조나 고용서비스를 계속 받기 위해 구직활동자로 등록하였고 실업급여 수급자처럼 이 규정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고용 활성화 정책은 실업급여와 기본소득 수급 집단 모두에게 유사한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해야 한다. 결국 고용 활성화 정책이 기본소득의 미흡한 고용 효과의 결정적 요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사실은 기본소득 수급자의 삶의 만족도나 사회 인식이 실업급여 수급자에 비해 더 긍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건 없는 돈을 주는 것이 사람들을 더 편하게 해줄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실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오히려 주목할 지점은 긍정적 인식의 증가 정도다. 두 집단 사이의 행복도의 차이는 10단계 척도에서 0.5단계(약 7% 증가)였다. 심리적 만족도를 7% 올리기 위한 정책이 반드시 기본소득과 같은 고비용 제도밖에 없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즉 심리적 측면의 긍정적 변화라는 결과가 기본소득의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어 보인다.
실험의 또 다른 교훈은 정책실험의 성취와 한계에 대한 것이다.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라는 논쟁적이며 재정에 항구적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검토하면서 정치적 지향 외에 증거에 기반해 판단을 하는 현명함을 보여주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기본소득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핀란드의 경험은 정책실험의 설계와 운영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미디어의 관심처럼 참가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심지어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실험 도중 기본소득과 정반대의 정책이 도입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마지막 교훈은 기본소득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것이다. 보편성을 강조하는 이념적 속성과 달리 현실의 기본소득은 모두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근로연령대의 개인에게 조건 없이 돈을 주는 제도의 최대 수혜자는 기존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30~50대의 가구다. 핀란드 기본소득이나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높은 관심은 사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사회안전망으로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의 반영임을 의미한다. 결국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제도의 포용성을 높이는 작업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과제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