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치형 ㅣ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과학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어느 때보다 높다. 진단검사에서 음압병실까지, 접촉자 추적에서 자가격리 손목밴드까지, 우리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코로나19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우리가 이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과학만이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생각을 굳혀 준다. 과학의 힘으로 코로나19와의 대결을 그나마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이제 코로나19가 과학을 어디로 밀고 갈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차례다. 노동, 교육, 예술, 종교 등 사회의 모든 영역이 재편된다는 코로나19 시대에, 우리가 원래 알던 세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 시대에, 과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코로나19는 우리가 과학을 수행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가 새롭게 발견하고 지켜야 할 과학의 가치는 무엇인가.
감염병의 대유행은 과학을 ‘돌봄’의 가치와 연결시켜 주었다. 이전까지 ‘과학’과 ‘돌봄’이라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는 것은 간호학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몇달 동안 과학자와 의료진이 환자 또는 잠재적 환자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욱 근본적인 의미에서 과학이 사회적 돌봄의 한 부분임을, 사람이 사람을 또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과학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 과학에 보내는 기대와 신뢰는 ‘돌봄의 과학’을 향하고 있다.
‘돌봄의 과학’은 존재 의의를 돌봄에 두는 과학이다. 여기서 돌봄의 대상은 사람과 지구다. ‘돌봄의 과학’은 의료적으로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을 돌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과학이자, 점점 취약하고 불안정한 상태로 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돌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과학이다. ‘돌봄의 과학’은 산업 발전이나 국방력 강화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내는 과학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와 지구의 취약한 곳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찾고 메꾸는 과학이다.
지난 주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엑스사가 민간 유인우주선을 성공적으로 발사한 일은 이 시대에 과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5월 중순 머스크는 지역 보건당국의 방침을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전기자동차 공장을 열흘 일찍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하여 비판을 받았다. 직원 건강을 돌보기보다는 공장 가동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머스크가 화성에 우주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계획도 위기에 처한 지구를 돌보는 대신 화성으로 도피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유인우주선이 멋지게 발사되던 바로 그때 미국 전역에서는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건과 뿌리 깊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는 점도 과학의 지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머스크가 성취한 우주 개발의 돌파구는 미국 사회에 뚫려 있는 큰 구멍을 더 부각시킨다.
과학은 단일하지 않으며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받아들이면서 여러 방향으로 나아간다. 코로나19 시대라고 해도 ‘돌봄의 과학’은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 효과’ 대신 ‘돌봄 효과’를 지향하는 과학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과학만이 아니라 세상의 평온을 유지하는 과학도 꼭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문제를 전격적으로 해결해 주지는 못해도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감당하는 과학으로 인간과 지구를 끝까지 돌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종식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포스트 코로나’ 과학을 섣부르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대비하고 마련해야 하는 포스트 코로나 과학에는 ‘돌봄’의 가치가 중요하게 들어갈 것이다. 만약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종 바이러스에 인간이 대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해야 하는 과학은 무엇인가. 만약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지는 암울한 순간이 온다면, 그때에도 우리가 멈추지 말아야 할 과학은 어떤 것인가. ‘돌봄의 과학’은 완전한 해결이 없는 문제 앞에서도 그 증상을 살피고, 고통을 줄이고, 혹시 모를 최후의 순간이 존엄하도록 돕는 과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