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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홍콩 문제’ 풀려고 홍콩을 없애려는가? / 정인환

등록 2020-06-04 16:36수정 2020-06-05 09:29

정인환ㅣ베이징 특파원

1997년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만7330달러였다. 개혁·개방 19년째를 맞은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여전히 781달러에 머물러 있었다. 그해 7월1일 이른 아침,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중국 인민해방군 장병을 태운 트럭이 홍콩으로 진입했다.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1842년 난징조약에 따라 영국에 홍콩을 할양한 지 155년 만의 귀환이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 홍콩도 중국도 세계도 달라졌다. 2018년을 기준으로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4만8675달러다. 반환 이후 2배 가까이 늘었다. 그해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9770달러였다. 반환 이후 약 12배가 늘었다.

매력적인 관광도시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란 홍콩의 위상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지난 20여년 세월 엄청난 속도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던 중국은 어느새 막대한 인구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시장’으로 떠올랐다. 홍콩은 그대로인데 중국이 바뀌다 보니, 홍콩과 중국의 관계도 달라졌다. 1997년의 홍콩과 2020년의 홍콩은 그래서 다른 곳이다.

1997년의 홍콩은 중국이 가고 싶은 길,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땅이었다. 개혁·개방에 영감을 주는 곳이자,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이 수혈되는 곳이기도 했다. 홍콩 같은 도시가 여러 곳 생긴다면, 중국은 분명 다른 나라가 될 터였다.

2018년을 기준으로 베이징·상하이·선전·광저우 등 중국의 15개 도시가 1인당 지역총생산 2만달러를 돌파했다. 같은 해 중국 17개 도시가 지역 총생산 1조위안(약 170조원)대를 넘어섰다. 지난 20여년 세월 동안 ‘홍콩 같은 도시’가 중국에 많아졌다.

그럼에도 홍콩은 경제력이 비슷한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달랐다. 2003년 홍콩의 헌법 격인 기본법 23조에 따라 추진된 국가보안법 제정은 시민사회의 반발로 무산됐다. 2014년엔 홍콩 행정장관 선출과 관련해 기본법 45조가 규정한 “보통선거 방식으로 선출하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우산혁명’이 일어났다.

우산혁명이 미완에 그친 뒤 한동안 숨죽이고 있던 홍콩 시민사회는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시위로 다시 한번 역동성을 분출했다. 지난해 6월9일 송환법 반대시위에 홍콩 시민 10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송환법 반대시위는 광범위한 민주화 요구로 확대됐고, 11월 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민주파의 압도적 승리로 열매를 맺었다.

“말하자면 홍콩은 ‘황금알을 낳은 거위’다. 그런데 자꾸 소리를 지르고 ‘주인’을 쪼아댄다.” 지난해 6월1일 홍콩 카오룽반도 몽콕의 허름한 건물 10층에 자리한 ‘6·4 기념박물관’에서 만난 리척얀(62) ‘애국민주운동 지지 홍콩시민연합회’ 회장은 이렇게 말하며 쓰게 웃었다. 당시만 해도 송환법 반대시위가 불붙지 않았던 때였다. 리 회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송환법이 통과되면 아무도 홍콩을 믿지 않을 거다. 그럼 투자도 끊길 거다. 어쩌면 중국 당국이 노리는 게 그것인지도 모른다. (…) 이제 중국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많아졌다. 그러니 홍콩을 없애서 ‘홍콩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진 거다.”

홍콩 시민사회는 송환법을 막아냈다. 중국은 보안법이란 더 큰 칼을 빼 들었다. 리 회장의 1년 전 발언은 ‘송환법’을 ‘보안법’으로 바꾸면 여전히 유효하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4일 보안법이 발효되면 홍콩 시민을 대거 받아들이겠다는 영국 등의 제안에 대해 “반역자 등 ‘나쁜 피’를 뽑아낼 수 있는 기회”라고 썼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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