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말글살이] 고양이 살해 / 김진해

등록 2020-06-07 17:24수정 2020-06-08 02:37

코로나19 봉쇄 완화로 영업을 재개한 태국 방콕의 한 고양이 카페에서 직원이 고양이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봉쇄 완화로 영업을 재개한 태국 방콕의 한 고양이 카페에서 직원이 고양이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신판 사전도 요동치는 말을 다 붙잡지 못한다. ‘살해’는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말인데, 이제는 동물에게도 쓴다. ‘엽기적인 고양이 연쇄 살해’, ‘길 잃은 강아지 잔혹 살해’. 동물의 인간화다. 동물에 대한 태도 변화는 말에도 흔적을 남긴다. ‘개 주인, 고양이 주인’이란 말은 자리를 잃고 ‘엄마, 아빠’와 ‘아이’라는 직계존비속 관계로 바뀌었다. 나는 ‘개 아빠’이고 직업은 ‘집사’이다.

고양이 관련 말은 특히 다채롭다. 행동(‘하악질, 골골송, 꾹꾹이, 식빵, 냥모나이트’), 생김새(‘양말, 젤리, 짜장, 카레, 고등어, 젖소’), 배변(‘감자, 맛동산’), 성장과정(‘꼬물이, 아깽이, 캣초딩’) 등 그들과 밀착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묘생(인생), 묘연(인연), 묘춘기(사춘기), 미묘(미모), 개묘차(개인차) 같은 말도 경쾌하다.

그사이 반려동물의 세계는 ‘펫코노미’라는 이름의 독립 시장으로 성장했다. 시장은 새로운 말의 자궁이다. 시장은 음식, 영양제, 장난감, 의류, 교육, 보험, 병원, 장례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 생로병사의 모든 단계에 촘촘히 대응한다. 동물 유기와 함께 걸핏하면 살처분당하는 가축 등 차별과 배제의 영역이 엄존하는 것도 인간세계와 거울처럼 닮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신들보다 애완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부르주아에게 반격을 가하려고 ‘고양이 대학살’ 사건을 일으킨 게 18세기였다. 이제 고양이는 장난감에서 인간의 친구로 바뀌었다. 고양이의 죽음을 ‘살해’라고 말하는 우리는 생명 존중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