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봉쇄 완화로 영업을 재개한 태국 방콕의 한 고양이 카페에서 직원이 고양이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신판 사전도 요동치는 말을 다 붙잡지 못한다. ‘살해’는 ‘사람’을 죽일 때 쓰는 말인데, 이제는 동물에게도 쓴다. ‘엽기적인 고양이 연쇄 살해’, ‘길 잃은 강아지 잔혹 살해’. 동물의 인간화다. 동물에 대한 태도 변화는 말에도 흔적을 남긴다. ‘개 주인, 고양이 주인’이란 말은 자리를 잃고 ‘엄마, 아빠’와 ‘아이’라는 직계존비속 관계로 바뀌었다. 나는 ‘개 아빠’이고 직업은 ‘집사’이다.
고양이 관련 말은 특히 다채롭다. 행동(‘하악질, 골골송, 꾹꾹이, 식빵, 냥모나이트’), 생김새(‘양말, 젤리, 짜장, 카레, 고등어, 젖소’), 배변(‘감자, 맛동산’), 성장과정(‘꼬물이, 아깽이, 캣초딩’) 등 그들과 밀착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단어들이 많다. 묘생(인생), 묘연(인연), 묘춘기(사춘기), 미묘(미모), 개묘차(개인차) 같은 말도 경쾌하다.
그사이 반려동물의 세계는 ‘펫코노미’라는 이름의 독립 시장으로 성장했다. 시장은 새로운 말의 자궁이다. 시장은 음식, 영양제, 장난감, 의류, 교육, 보험, 병원, 장례 등 ‘요람에서 무덤까지’ 의식주, 생로병사의 모든 단계에 촘촘히 대응한다. 동물 유기와 함께 걸핏하면 살처분당하는 가축 등 차별과 배제의 영역이 엄존하는 것도 인간세계와 거울처럼 닮았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신들보다 애완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부르주아에게 반격을 가하려고 ‘고양이 대학살’ 사건을 일으킨 게 18세기였다. 이제 고양이는 장난감에서 인간의 친구로 바뀌었다. 고양이의 죽음을 ‘살해’라고 말하는 우리는 생명 존중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