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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주거권과 전세의 미래 / 최경호

등록 2020-06-15 18:38수정 2020-06-16 14:54

최경호 ㅣ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정책위원장

네덜란드에서 처음 집 구하러 다닐 때다. “계약 기간이 얼마냐”라 물으니 중개인은 당황스러워했다. 무기계약이 ‘노멀’인 나라에서 참으로 낯선 질문이었던 것이다. 주거보조비도 유학생 주머니 사정에 큰 도움이 됐지만, ‘이사 걱정이 없다’는 안정감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었다.

최근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들에 대해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강렬한데, 그 주택을 임대용으로 쓰는 한 성실한 임차인은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슨 큰일 날 재산권 침해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월세 신고제는 시장주의적 입장에서 봐도 투명성 제고를 위해 환영할 제도다. 그래선지 주거권 신장이라는 대의는 대부분 인정하면서, 임대료를 미리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부작용을 대개 지적하고 있다.

전세는 외국 사례가 거의 없는 특이한 제도다. 임대차 계약과 금융의 성격을 동시에 가져 모두가 유익하게 받아들여서인지, 한 세기 넘게 명맥을 이어왔다. 임대인은 적은 돈으로 집을 사고 시세차익을 얻거나, 돈을 굴려 추가 투자를 할 수 있었다. 이른바 ‘레버리지’ 효과다. 소비자금융으로서는 미래에 거주할 집을 ‘전세 끼고’ 미리 마련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임차인에겐 ‘강제저축’을 통해 자가소유로 가는 디딤돌이기도 했다. 이를 강조하여 “전셋값 올리는 집주인을 만나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법이 개정되면, 보증금 반환의 여유가 있는 임대인부터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일부) 상환하고 월세로 전환하겠다는 것을 막을 명분은 약하다. 일종의 부채인 전세보증금을 갚겠다는 것을 공공이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고시된 전월세전환율의 범위 안이라면 임대료 인상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세입자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현금지출은 날벼락일 수 있다. 전세가 월세보다 양호한 점유형태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니 더욱 그렇다. ‘전세의 월세화’를 걱정할 만하다.

그런데 이미 전세의 월세화는 진행 중에 있었다. 1995년 29.7%로 월세의 2배가 넘었던 전세는 2010년 21.7%, 2019년 15.1%로 계속 주는 추세다. 1995년에서 2019년 사이 자가점유율은 53.5%에서 4.5%포인트 증가했고 월세는 8.5%포인트가 늘어 23%다. 다주택자들과 이들의 보유주택 수는 2012년 첫 통계 작성 이후 계속 늘었다. 각자 사연은 다양하겠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세금을 굴릴 수 있는 다주택자들은 집을 늘려갔고, 강제저축의 덕을 보고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이들도 있었지만, 주거 사다리에서 밀려 월세로 내려온 이들이 자가로 올라간 이들의 갑절에 달한다. 전세가 임차인보다 임대인에게 더 유리했다는 근거다.

도시화가 성숙기로 접어들어 신규 택지가 고갈되고, 주택공급 추세가 완만해지며, 저금리가 지속되고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될수록, 사람들은 목돈으로 다른 투자처를 찾기보다는 안정적인 월 수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최근 ‘수익형 부동산’이 뜨는 배경이기도 하다. 어쩌면 특정한 상황에서나 작동 가능했던 전세의 수명이 애초에 다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질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흐름에서 꼭 필요한 제도를 비로소 정비한다는 시각이 미래지향적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거안정의 대가로 전세 세입자는 주택의 근저당과 집주인의 신용 상태를 체크하고 확정일자를 받아야 했다. 반전세나 월세와 무기계약의 시대가 되면 집주인이 세입자를 더 꼼꼼히 평가하게 될 것이다.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월세의 3~4배 이상의 월수입 증명을 요구하는 집주인들도 많았고 이는 법적으로 보장된 임대인의 권리였다. 한번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도, 일단 들어가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세 체제에서 세입자 지원책이 전세금 대출이었다면 월세 체제에선 주거보조비를 확대하는 것도 복지 차원의 과제가 될 것이다.

결국은 우리가 만들어가기 나름이고, 선택하기 나름이다. 31년 전까지는 ‘1년 계약’이 당연한 사회였다. 임대인에게 더 유리한 전세제도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살지, 다소간 진통을 겪더라도 ‘뉴노멀’을 만들고 그에 걸맞은 후속 보완조치를 마련할지를 결정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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