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l 작가
어느 지자체 교육청에서 만든 청소년노동인권 교육용 소책자를 봤다. 만 17살 별이가 아르바이트 중에 전치 2주 부상을 당했는데 사장님이 산재처리를 거부하고 있다. 이럴 때 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변은, 사장님이 사실확인을 해주지 않아도 ‘사업주 날인 거부 사유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밀린 임금 받는 법, 휴일수당 받는 법 등 실용 팁이 제시된다.
나에게 맞는 일자리 구하는 법도 있다. 청소년은 하루 7시간 이상 일할 수 없고 밤 10시 이후 야간노동은 금지다. 아르바이트할 때 성인의 동의가 필요한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살고 있는 만 15살 달이는 누구의 동의를 받아야 할까. 부모님인 친권자가 없거나 행사할 수 없는 경우 ‘위기 청소년’은 후견인을 선정하면 된다고 나온다.
‘이것만은 알고 일하자’는 제목 아래 100쪽이 넘는 빽빽한 자료를 살펴보자니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게 있어 다행이다 싶다가, 이 생소한 용어를 이해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을 시간과 의욕이 있는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 싶었다. 좀 더 근원적인 회의가 밀려왔다.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노동에는 어쩌면 이렇게 가지가지의 수난과 수모가 예정돼 있는가.
‘위기 청소년’이란 단어가 눈길을 붙든다. 어감이 부조화스럽다. 아이들에게 돌봄 공백을 초래한 것도 어른이고, 어리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안 주며 부려먹는 사람도 어른이다. 문제를 만든 그들이 ‘위기 성인들’이다. 그러니까 이런 교육도 취업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창업하는 어른들이 먼저 이수했어야 맞는 거다. 고용주가 노동법 따윈 ‘몰라도 되는 권력’을 누리는 이런 나라가 ‘위기 국가’라고 자료집 내용을 정정해주고 싶었다.
교사들 대상 강연에 가면 선생님들이 꼭 묻는다.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하는 방법을 좀 알려달라고. 나도 묘안이 있진 않다. 국·영·수 중심으로 예습·복습 철저히 하라는 학습법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게 가능한 환경에서 누구나 자라는 게 아니듯이, 노동인권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일하는 조건은 지역, 업종, 업주 등에 따라 천태만상이라서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말을 아끼게 된다.
그래서 저 말고 “아이들에게 물어보시라” 권한다. 나를 포함해 기성세대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겪는 ‘현장’을 거의 모른다. 거기다 대고 “주휴수당 꼭 챙겨라, 너희들의 권리다”라고 말하면 아이들은 엎드려 잔다. 왜 주휴수당을 챙기지 못할까. 있는 줄 몰라서, 혹은 권리를 주장했다가 잘리고 인근에 소문이 나는 바람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친구처럼 자기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워서일 수도 있다. 소책자에 담긴 대처법이 무용지물이고 아이들이 싼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사정을 인지하고 상처받고, 그렇게 아이들과 마음의 진도를 맞춰놓아야 교육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는 청소년들을 만났을 때 아르바이트 경험을 들려달라고 한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입 다무는 아이가 있고 대항하는 아이도 간혹 있다. 참았을 땐 왜 참았는지, 싸우는 아이에겐 어떻게 말했는지 물어보고 아이들이 ‘말의 시동’을 꺼뜨리지 않도록 거든다. 그 두서없는 말들 속에서 나도 아이들도 저절로 느끼고 배운다.
‘알바 경험 말하기’가 매주 꾸준히 열리는 전국 교실 풍경을 상상해본다. 말하기는 저항의 시작 버튼이다. 자기 경험을 자기가 말하는 사이 아이들은 외부에 휘둘리지 않을 마음의 힘을 쌓아간다. 동시에 남의 사연을 들으며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내 옆의 타인이 가장 좋은 텍스트다.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의 적임자는 노동하는 청소년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바꾸기 힘들지만 적어도 말하는 사람은 바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