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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미국 인구 센서스의 ‘인종 난센스’ / 전정윤

등록 2020-06-24 18:49수정 2020-06-25 09:49

전정윤 ㅣ 국제부장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세계적인 ‘반인종주의’ 시위로 확산됐다. 거대한 항거의 흐름에 작은 목소리를 얹는 짧은 글에서, 미국의 센서스 인구조사 항목을 살펴보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종을 차별하지 말라”를 넘어 “인종을 분류할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드러내기에, 그보다 더 훌륭한 교재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실시된 미국 인구총조사에 포함된 9가지 질문 가운데 분류체계가 유독 두서없이 긴 항목이 바로 ‘인종’이었다. 그 복잡성이 가히 ‘설문으로서 유의미한 항목인지’를 의심케 할 정도다. 미국은 큰 틀에서 16개 범주로 인종을 구분한다. ‘히스패닉, 중남미, 또는 스페인 계통’ ‘백인’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메리칸 인디언 또는 알래스카 원주민’ ‘중국계’ ‘베트남계’ ‘하와이 원주민’ ‘필리핀계’ ‘한국계’ ‘사모아족’ ‘인도계’ ‘일본계’ ‘차모로족’ ‘기타 아시아인’ ‘기타 태평양 섬 원주민’ ‘그 밖의 다른 인종’이다.

그러나 백인이더라도 독일계, 아일랜드계, 잉글랜드계, 이탈리아계, 레바논계, 이집트계‘처럼’ 구체적으로 적게 돼 있다. 흑인 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역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자메이카계, 아이티계, 나이지리아계, 에티오피아계, 소말리아계‘처럼’ 적으라고 쓰여 있다. 이런 식으로 45개 인종 집단과 출신 민족을 예시한 뒤, 거기서도 빠진 ‘그 밖의 다른 인종(또는 출신 민족)’을 또 구체적으로 적게 돼 있다. 유엔 회원국 기준 200여개 국가 이름과 그보다 더 많은 소수민족 이름에 이렇게 ‘계’를 붙여 인종으로 표현할 거라면, 차라리 출신국과 출신 민족으로 분류하는 게 맞다.

애초 미국의 16개 인종 구분이 ‘자의적 분류’라는 근거는 더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조너선 마크스는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에서 미국과 영국 센서스의 인종 분류 양식 중, 아시아인을 서로 다르게 다룬 점을 지적했다. 미국은 동아시아 나라들만 구분한 반면, 영국은 역사적·사회적으로 더 가까운 남아시아 중심으로 구분했다.

마크스는 “인종은 자연의 범주가 아니며, 사람 종의 공식적인 동물학적 하위분류 단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가 자연스럽게 차이가 구분되는 패턴에 따른 인종 분류를 고안해낸 뒤 300여년 동안 과학이 이룬 성취는 “인종 집단 사이의 불연속성과 인종 집단들 안에서의 동질성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다. 75억명 ‘인류’가 있을 뿐, 4개든 200여개든 몇개로든 ‘인종’으로 분류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인간사회에서 실재하는 ‘인종’이라는 차이는 오히려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도 그 야만적인 ‘문화’적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인종주의가 제도로 고착됐다. 박경태 성공회대 교수의 책 <인종주의>를 보면, 신대륙 미국의 가난한 백인 하인들은 처지가 비슷한 흑인 노예에게 특별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함께 술 마시며 어울렸고,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두 집단 사이에 인종주의가 싹튼 건, 백인 하인과 흑인 노예의 ‘연대’ 반란을 두려워한 농장주들이 두 집단을 의도적으로 차별하는 제도를 만들면서부터다. 백인 하인들로 하여금 ‘너희는 흑인 노예와 다른 존재’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초기 버지니아 식민지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에드먼드 모건이 인종주의를 “부유한 백인 자본가가 가난한 노동자와의 계급 갈등을 피하기 위해 고안한 통치 도구”로 본 이유다.

미국에서 노예 해방이 선포된 지도 157년이 지난 2020년, 플로이드의 목을 8분 넘게 무릎으로 짓누르면서 데릭 쇼빈이 보여준 ‘표정’에 특히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냉담하게 ‘다른 인종’의 숨을 끊어놓는 그의 얼굴에선 ‘같은 인류’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엿보이지 않았다. 쇼빈은 과학적 인종 분류 근거조차 못 되는 멜라닌 색소량 차이를 그 원인으로 자각했을 수 있지만, 교묘하게 ‘너희는 흑인과 다른 존재’라는 의식을 심어준 제도―이를테면 (주로 백인 경찰이 흑인을) 과잉진압해도 선의를 증명하면 책임을 지우지 않는 ‘공무원 면책법’―가 그를 인류애조차 거세된 괴물로 만든 건 아닌지, 에드먼드 모건의 식민지 초기 연구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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