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규 ㅣ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헌법 제34조에서 보장하는 진정인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에서 규정하는 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 관련 지자체의 재난긴급 소득지원 시 이주민 배제’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 결정문의 일부다. 당연하게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침해된 사건이고 진정인도 그 침해를 주장했는데 판단대상이 아니란다.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인권위는 서울시와 경기도의 외국인에 대한 재난긴급지원금 차등 대우가 평등권 침해임을 확인하고 정책 개선을 권고하기는 했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에 의하면 진정과 조사를 할 수 있는 인권침해 혹은 차별행위의 대상을 ‘헌법 제10조부터 제22조까지의 규정에서 보장된 인권’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조항에 의하면 헌법 제23조 이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근로의 권리, 노동3권, 환경권 등 사회권적 기본권은 침해당하더라도 원칙적으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할 수가 없다. 현행법은 기본권을 신체의 자유 등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구분하고 사회권을 ‘프로그램적’ 권리에 불과하다고 규정짓던 과거의 사고에 머물러있다. 인권적 상상력으로 시대를 앞서가야 할 국가인권위에게 국제적 흐름은 물론 국내 다른 영역에 비해서도 가장 뒤처진 인식 틀을 강요한다.
2018년 국가인권위 혁신위원회는 진정 가능 사건의 범위를 사회권으로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국제인권기구들의 명시적인 개선 요구도 있었다. 예컨대, 유엔사회권위원회는 2017년 최종견해에서 “국가인권위의 조사권한이 헌법 제10조 내지 제22조에 국한되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권한은 부재함에 우려한다”고 밝히면서 “국가인권위가 사회권규약 이행에 관한 내용을 진정사건으로 조사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국가인권위원회법을 개정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의 ‘인권’은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근거하는데 위 권고대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가인권위가 국제인권기준 혹은 권고에 기초해 다른 정부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할 정당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권리와 기초적 자유가 지닌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상호관련성”은 확인되었고, 자유권과 사회권의 본질적 구분은 극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그 판단의 기준은 달리할 수 있지만 국내 헌법재판소, 법원에서도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진정과 관련하여 사실상 국가인권위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국민권익위의 경우 그 고충 민원의 대상을 자유권 영역에 한정하지 않는다. 즉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민에게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을 모두 민원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18년 국가인권위 혁신위원회 권고에 이어 작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 관련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서도 위 의견이 충분히 피력되었고, 올해에도 유사한 취지의 법 개정안 자문의견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국가인권위는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진정사건 사회권 배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평등권 침해 조사, 정책 권고로 일부 사회권을 다루는 측면이 있다지만 방치되는 인권침해에 대한 답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사회권의 구체적인 의미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채 막연한 평등권 침해 여부가 논해지는 방식은 실제 권리 구제를 어렵게 할 수도 있다. 현재 인력과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거나 그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고 까다롭다거나 하는 변명은 인권에 기초한 접근을 해야 할 국가인권위가 할 말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 의견표명”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사람의 차별금지는 얘기하면서 인권 간의 차별과 배제에 침묵한다면 그 법 제정 의지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든 사람, 특히 취약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의 보장과 침해 방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 이제 더 이상 사회권의 침해도 용납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과거의 익숙한 관념이나 습관과 결별하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이고 그 게으름은 의사와 무관하게 때론 사람의 생명과 자유를 앗아가고 큰 상처를 남긴다. 나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